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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환영’ 내다 건 서울 주당(酒黨)들의 신흥 명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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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21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 서울 ‘락희옥’

서울 을지로 락희옥(樂喜屋)의 대표 메뉴. 왼쪽부터 거북손, 돼지고기 보쌈, 성게알. 신인섭 기자

서울 을지로 락희옥(樂喜屋)의 대표 메뉴. 왼쪽부터 거북손, 돼지고기 보쌈, 성게알. 신인섭 기자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집은 외식업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밥집인지 술집인지 정체성은 모호하다. 와인을 갖고 가도 코르키지(Corkage)를 받지 않는다. ‘와인 반입 환영’ 또는 ‘와인 가져와서 드세요’라고 잘 보이는 곳에 새겨뒀다. 개업 4년 만에 매장 면적이 33㎡(10평)에서 555㎡(168평)으로 늘어났다. 정규 직원도 1명에서 18명으로 늘었다. 큰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빚도 전혀 없다.

구룡포 해녀가 따서 보낸 성게알 # 신안군 만재도에서 캐낸 거북손 # 비싼 냉장육을 찐 보쌈 돼지고기 # # 양념 단순한 내추럴 푸드 추구해 # 주인이 직접 만 소맥 잔술도 팔아 # # 대표 식사메뉴는 김치말이국수 # 한 그릇 팔 때 500원씩 기부도

락희옥 주인 김선희씨가 김치말이국수 국물을 만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락희옥 주인 김선희씨가 김치말이국수 국물을 만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애주가의 눈으로 보면 성공의 동력으로 안주가 먼저 짚인다. 재료와 조리법이 색다르고 차림새는 세련됐다. 무엇보다 맛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재료를 엄선한 덕분이다. 주인 김선희(46)씨는 “좋은 재료를 구하는 노력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직원들에게 다짐한다.

‘한국 현대식 요리’를 표방하며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2014년 4월 문을 연 한식당 ‘락희옥(樂喜屋)’ 얘기다. 마포(66㎡)ㆍ을지로(192㎡)ㆍ광화문(165㎡. 이달 하순 개점) 3곳과 마포점 이웃에 있는 락희펍(132㎡)까지 매장 4개를 직영한다.

락희옥의 대표 식사메뉴는 김치말이국수(8000원)와 멍게비빔밥(1만2000원). 된장찌개(7000원)와 보쌈ㆍ차돌ㆍ제육정식(각 1만5000원)도 있다. 안주는 보쌈ㆍ거북손(만재도)ㆍ성게알(각 3만5000원)이 인기 3걸이고, 차돌박이구이ㆍ육전(각 3만5000원)ㆍ마샐러드(2만원)도 찾는 손님이 많다.

술은 와인 53종, 맥주 23종, 전통주와 기타 10여 종 등 80여 종을 갖췄다. 와인은 소규모 수입상이 들여온 4만~5만원대 싸고 좋은 제품이 주축이다. 맥주는 시중 소매점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 많다. 특이하게 소맥을 잔술로 판다. “술 없이는 음식을 못 먹는다” 할 만큼 술 좋아하는 주인이 찾아낸 ‘황금비율’로 말았다고 한다.

락희옥의 김치말이국수. 신인섭 기자

락희옥의 김치말이국수. 신인섭 기자

김치말이국수는 온난화로 여름이 길어져 시원한 음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대표 메뉴로 삼았다. 간단해 보여도 쉬운 음식은 아니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원가도 상당히 높다. 한 그릇에 수연소면 2000원어치가 들어간다.

국물은 맑은 동치미와 배추물김치를 따로 담가 익힌 후 섞어서 만든다. 7일 걸린다. 동치미는 2시간 절인 무를 정수한 물에 넣고 배즙ㆍ양파즙을 섞은 뒤 쪽파, 홍고추, 청양고추, 통생강, 통마늘도 넣고 간 맞춰 5일간 냉장 숙성한다. 김치냉장고에서 익히면 맛이 가장 좋다.

배추물김치는 김치를 담가 이틀 익힌 다음 핏물을 충분히 뺀 양지머리 육수를 부어 5일간 냉장 숙성한다. 동치미와 배추김치 국물을 같은 양 섞으면서 배즙ㆍ양파즙ㆍ설탕을 더 넣으면 김치말이국수 준비가 끝난다. 국수 한 그릇 팔 때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500원씩 기부한다. 그릇은 찻사발을 만들던 도예가 고(故) 김인용씨 작품이다.

락희옥의 보쌈에 들어가는 고기. 냉장 돼지고기를 삶지 않고 쪘다. 신인섭 기자

락희옥의 보쌈에 들어가는 고기. 냉장 돼지고기를 삶지 않고 쪘다. 신인섭 기자

보쌈은 보통 고기를 삶지만, 이곳에서는 냄비 바닥에 대파와 양파를 깔고 고기를 얹어 찐다. 삶을 때 고기 맛이 빠질 것을 염려해서다. 물을 넣지 않아도 채소와 고기가 품은 수분으로 충분히 익는다.

고기는 껍질이 붙어있는 국산 냉장 ‘미박삼겹살’을 쓴다. 원가는 비싸도 얼리지 않은 고기라 풍미나 육향이 좋다. 익은 고기 300g이 한 접시로 나간다. 고기는 익히면 무게가 반쯤 줄어드니 생육 600g(1근)이 한 접시 분량이다. 무 1개에 배 1개 비율로 손가락 크기로 잘라 담근 보쌈속김치와 김치말이국수 국물용으로 익힌 배추김치, 절인 배추, 새우젓이 함께 차려진다.

고기는 두툼하고 넓적하게 잘라 접시에 담고 손님 앞에서 가위로 잘라준다. 자른 고기는 어른 엄지보다 굵어 김치를 얹어 먹으면 한 점으로 입이 가득 찬다. 고기를 향신료 넣지 않고 찌면 돼지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찔 때 고기 위에 저민 수삼을 뿌린다.

락희옥의 가벼운 안주 거북손. 전남 신안군 만재도에서 보내온다. 신인섭 기자

락희옥의 가벼운 안주 거북손. 전남 신안군 만재도에서 보내온다. 신인섭 기자

안주 메뉴는 술꾼인 주인이 주당의 마음으로 설계했다. ▷성게알, 거북손 같은 가벼운 안주 ▷보쌈처럼 배고픈 손님을 위한 든든한 안주 ▷김치말이국수나 정식 3종 같은 식사, 안주, 속풀이를 겸하는 안주 등이다. 특히 김치말이국수에는 배즙ㆍ양파즙이, 보쌈속김치에는 배가 많이 들어가 속을 편하게 해준다. 음식에 배를 많이 쓰는 건 어머니 영향이다. 젊은 시절 술 마시고 속 쓰리다 하면 배ㆍ미나리 즙을 자주 해줬다.

거북손은 만재도(전남 신안군 흑산면) 어촌계장이 마을에서 확보한 전량을 ‘락희옥’에 보내준다. 자루 부위는 조개 맛이 나고,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 검은 솔 같은 만각 부위는 꽃게 맛이 난다.

락희옥의 가벼운 안주 성게알. 구룡포에서 해녀가 채취한 것이다. 신인섭 기자

락희옥의 가벼운 안주 성게알. 구룡포에서 해녀가 채취한 것이다. 신인섭 기자

성게알은 구룡포(경북 포항) 해녀가 채취한 국산이다. 갸름한 형태가 고스란히 살아있어 신선함을 알 수 있다. 산란기가 6~9월이어서 아직은 철이 이른데 산지에서 직접 공급받는 귀한 별미다. 미나리, 오이채와 함께 김에 싸서 먹으면 향이 진하다.

당초엔 한식 다이닝을 하고 싶어 비싼 수업료 내고 요리를 배웠다. 지금도 김치ㆍ밑반찬ㆍ소스를 4년간 호흡을 맞춘 아주머니 2명과 주말마다 준비한다. 매장에 술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아 밥보다 술 쪽으로 비중이 쏠리면서 주점 색이 짙어졌다. 점심에 모든 테이블에서 낮술을 하는 날도 있었다. ‘낮술 환영’이라고 알린 효과다.

주인은 좋은 재료에 양념은 단순하게 하는 내추럴 푸드를 추구한다. 맛은 주재료로 내고, 차림을 멋지게 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그래서 음식 양념이 강하지 않다. 그의 경험으로는 좋은 양념으로 단순하게 조리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적었고, 내추럴한 음식일수록 술과 잘 맞았다.

육전은 한우 안심에 계란만 입혀 부치고 장식도 하지 않는다. 파 무침과 초간장만 곁들여 낸다. 파 무침은 소금과 고춧가루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사람들은 양념도 별로 안 들어갔는데 3만5000원이면 비싸지 않느냐 하는데, 주인은 “재료 원가 비중이 50%가 넘는다”고 말했다.

상호 ‘락희옥’에는 비원(悲願)이 담겨있다. 락희옥을 열기 전 3년간 수입이 전혀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낭인처럼 살았다. 앞서 10년간은 강남에서 큰 식당 2개를 운영했다. 연매출이 50억원에 육박하던 때도 있었다. ‘갑툭튀’가 아니라 베테랑이 부활한 것이다.

어렵던 시기에 즐겁고 기쁘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락희’를 마음에 담았다. ‘Lucky’를 음역한 ‘락희치약’ 광고가 힌트가 됐다. 예스럽지만 현대적 느낌도 있는, 앤티크 가구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기대하며 상표등록을 했다.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아 재미있다. 맛있는 거 먹이고 돈 받고,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그는 겉보기만큼은 늘 즐겁고 기쁜 표정이다.

코르키지(Corkage) 안 받는 이유

락희옥 광화문점 외부 창문에 낮술 환영 와인반입 환영이라고 적혀있다. 신인섭 기자

락희옥 광화문점 외부 창문에 낮술 환영 와인반입 환영이라고 적혀있다. 신인섭 기자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술 못 마시는 사내는 모자라는 녀석이니 상종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부산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서울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늘 술을 들고 식당에 다니면서 마셨다. 와인 코르키지 무료 아이디어는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와인 코르키지는 음식점에서 손님이 반입한 포도주를 마실 때 술잔 제공 등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보통 1병에 1만~2만원 받는다. 그게 무료라니 애주가에겐 희소식이다.

사람들은 코르키지를 안 받으면 매장의 술이 안 팔릴 것으로 걱정하는데 그렇지 않다. 테이블마다 술을 마셔 식당이 ‘주당’으로 바뀌었다. 옆 자리에서 와인을 마시니 ‘나도 마시자’는 분위기가 전염된다. 와인을 가지고 오는 손님은 30% 정도다. 70%는 매장 술을 팔아주니까 긍정적 효과가 있다. 가지고 온 와인만 마시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주문해서 더 마신다.

한식당은 주류 매출이 취약하다. 손님이 반주 정도만 생각하고 2차로 가기 때문이다. 한 자리에서 식사와 술을 겸하게 유도하고, 매장 문턱을 낮추기 위해 개업 때부터 BYOB(bring your own bottle: 술 각자 지참) 영업정책을 시행했다.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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