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에듀]"전문가 시대 끝났다. 융합적 이해력이 더 중요한 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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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는 의학, 석사는 정책, 박사는 공학을 전공한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정부와 기업의 미래 트렌드와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학부는 의학, 석사는 정책, 박사는 공학을 전공한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정부와 기업의 미래 트렌드와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지훈(48) 교수(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래 비전 전략가다. 관습과 관행을 의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건 그의 직업이자, 아주 오래된 버릇이다.
한양대 의대를 나왔지만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의사의 길을 걷지 않았다. “본과 3, 4학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뻔하게 정해진 길을 걷는 게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 똑같은 호떡이 되는 것 같았다. 대학원에서 보건정책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의공학박사가 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융합이 중요해지는 미래를 준비했던 셈”이다.
2007년 귀국 후 관동대 의과대학 IT 융합소장, 경희사이버대 미래고등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재작년에는 정규트랙 교수직에 사표를 냈고 지난 3월 수리됐다. 그는 “앞으로는 정규직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강연하면 ‘그러는 넌 정규직 아니냐’고 되묻는 질문이 뼈아팠다.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한 두 과목만 가르친다”고 했다. “안정성은 줄었지만 이것저것 문어발처럼 하는 게 많아 괜찮다”는 그는 인터뷰 전후로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그는 “내가 어느 자리에 어떤 직함으로 앉아 있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역량이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내 아이가 만날 미래

그는 2013년 『내 아이가 만날 미래』라는 책을 집필했다. 우리 아이가 살게 될 가까운 미래와 그 시대에 필요한 인재, 교육의 방향에 관해 쓴 책이다. 그를 지난 4일 'IT의 메카' 테헤란로 부근에서 만나 교육과 자녀 양육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육+혁신' 릴레이 인터뷰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 대학 동기는 대부분 의사겠다. 의사의 길을 포기한 걸 후회하지 않나.
 “다 자기 인생사는 거다. 다들 반대했다. 은사 한 분만 빼고. 그분은 두 가지를 말했다. 불확실한 거 견딜 수 있냐.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냐.”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고분고분 말을 듣는 학생은 아니었다. 늘 왜 그래야 하나 의심했다. 고등학교 때는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다. 그 전에 피아노도 배웠고 작곡도 했다. 만화책과 애니메이션도 엄청 좋아했다. 코딩은 초등학교 때부터 했다. 학교가 감옥 같았다.”

-‘내 아이가 만날 미래’라는 책을 쓴지 5년이 지났다. 그때 전망한 미래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
“예상보다 빠르게 변했다.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변화를 잘 못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아주 많이 바뀌어있다.“

-학교도 바뀌었나.

“교육이 미래 지향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보수적이다. 부모나,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 경험에 묶여 있어서, 변화를 믿지 못한다. 언제나 사회가 먼저 바뀌고 교육이 변한다. 먼저 대학, 고등 교육이 변하고, 중등, 초등이 바뀐다. 변혁기에는 교육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괴리가 커 교육이 무용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다. 앞으로 교육 시스템 전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 어떤 사람이 인재인가.

“변화에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세상이 계속 변하고 앞으로는 안정적인 게 별로 없다. 정해진 루틴을 잘하는 것은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 문제를 더 잘 인식하고, 창의적으로 자기만의 솔루션 내놓으려면 전문가보다는 다방면에 대한 통합·융합적인 이해력이 필요하다. 또 앞으로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점 많아진다. 협력, 소통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진다. 이런 사람은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학창 시절엔 진학에 힘써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학 간다고 잘 되는 세상이 아니다. 포지션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로 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책임져야 한다. 조직 중심이 아니라 개인 역량 중심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중고등학교 때 할 수 있는 것 많다. 프로그래밍도 할 수 있고, 작가가 될 수 있다. 유튜브에서 배우고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다. 그게 다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학교 공부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창의력이 높은 아이들을 20년 동안 가둬놓고 똑같은 공부만 시키는 것은 죄악이다. 나중에 큰 원망을 들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문제 파악 능력, 창의성, 협업 능력은 30년 전에도 중요했던 덕목 아닌가. 세상이 정말 변한 게 맞나. 달라진 것 세 가지만 꼽아달라.

“30년 전처럼 명문대 나오면 안정적인 삶이 가능한가. 무엇을 전공한다고 해서 그게 정말로 자신의 전공이 되나. 의사나 변호사를 하더라도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않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

-세상이 달라졌다고 반드시 과거와 다른 역량의 인재가 필요한 건가.
“도요타는 최근 자신을 자동차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이동성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회사라고 정의한다. 과거엔 제품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서비스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이동과 관련한 문제를 찾고, 창의적으로 이를 해결하며 가치를 창출한다. 그게 공유 자동차나 자율주행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건 만드는 기술만 있어선 안 된다.”

-자녀가 있나. 학교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면 공부는 시키지 않나.
“고3 아들과 중3 딸이 있다. 학원은 다니지 않고, 딸은 피아노만 개인 교습 받는다. 큰 애는 인터넷 고등학교에 다닌다. 중학교 때부터 코딩을 좋아했다. 깃허브 등을 통해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커리어를 관리한다. 미국 학교 진학을 알아보고 있다. 딸은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 같다.”

- 자녀 양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 공통점을 찾아 이야기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하고, 호기심을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기능을 높여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중요하다.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지금보다 더 경쟁적이고, 더 효율을 강조하고,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암울한 모습은 아닐까.
“자본과 기술이 집중돼 일시적으로는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합의를 이뤄낼 것이다. 기본 소득이 아주 당연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투명해져 과거의 혁명처럼 극단적인 갈등이 발생하지는 않을 수 있다.”

-사실 미래의 학교가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농경사회에서는 산업사회를 상상할 수 없었다.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미래의 학교도 잘 그려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어쩌면 학교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학교라는 것이 원래 산업사회의 산물이니까. 꼭 교사가 누구를 가르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미래사회에서는 학교라는 틀이 사라지고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새로운 시스템이 생길 수도 있다.”

-자녀가 하는 게임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가 많다.
“게임은 일종의 미디어다. 앞으로는 게임을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게임을 이해 못 하면 협력하고 공감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뭔가 이상해지고 문제가 많이 생길 것이다. 게임 때문에 일상생활이 곤란해지지만 않으면 된다. 게임도 일종의 역량이다.

-어떤 게임이 좋을까.
“좋은 게임이 많다. 좋은 콘텐츠기도 하다. 난 ‘젤다의 전설’ 같은 끝이 있는 게임이 좋다. 하나하나 돌파하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시간과 현금을 투입하며 무한경쟁을 자극하는 게임은 좋지 않다. 도박과 비슷하다. 게임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내가 게임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사피엔스' 역사와 미래 통찰력 빛난다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을 꼽아달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역사, 미래, 과학기술,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찰력이 빛난다. 내가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재밌게 읽었다. 빅픽처를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 좋다. 호기심은 열정의 근원이다. 거기서 모든 게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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