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당대회에 동구시선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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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공산당 특별대회를 바라보는 동구권국가들의 시선은 예사로울 수가 없다.
바로 20년전「고르바초프」식의 개혁을 시도하려다 소련의 탱크에 짓밟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그때도 지금처럼 소련공산당서기장「흐루시초프」의 선창에 주저없이 따라나섰다 당한 봉변이었다.
64년「흐루시초프」가 보수파의 반발로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동구에도 피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 특별당대회가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해도 좋다. 소련이 재채기를 하면 동구는 감기가 들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 특별당대회가 개혁에 한걸음더 전진할 경우 동구의 행동반경은 그만큼 더 넓어질 것은 분명하고 반대의 경우도 다소영향은 있겠지만 60년대와 같은 전면후퇴는 없을 것이다.
소련과 동구의 개혁과정은 최근 상호조장적으로 심화되어왔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시장기능을 도입하거나, 서기장 및 정치지도자들의 임기제한과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열린사회주의의 지향 등이 그렇다.
동구에 분 개혁의 바람은 사실 86년과 87년에 걸쳐 폴란드·체코·루마니아를 순방한 「고르바초프」의 지도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소련의 서기장이 당내기반을 굳히기 전인 취임 후 2∼3년 이내에 동구를 순방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개혁을 선도해 자유화의 물결이 「적정규모」를 넘어서는 것을 예방하겠다는 내면지도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는 폴란드에서 조건부이지만 「야루겔스키」정권에 서방국가와의 경제외교를 포함, 개혁정책에 있어서 행동의 자유를 보장했고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세스크」대통령의 세습정치를 간접 비판하며 경제개혁을 촉구했고 체코에서는 11년전의 자유화 운동과는 다른 소련형의 경제개혁을 장려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체르넨코」전정권이 저지했던 「호네커」동독서기장의 서독방문을 허가했으며 88년초 유고슬라비아방문을 통해 신베오그라드 선언을 발표, 그가 대동구정책에 임하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 자국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의 노선을 선택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는 소련의 대동구 불간섭 및 사회주의적용의 총체적 탄력성을 허용한 것이다.
이같은 지원에 힘입어 헝가리는 시장경제적 개혁을 강화하는 한편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존재양식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 국가원수직을 비당원에게도 개방하는 것을 비롯, 서기장의 임기제 및 정치민주화와 사회주의적 다원주의의도임을 서두르면서 이례적으로 취임 몇달이 안된 「그로스」서기장의 소련과 미국방문을 발표했다. 특히 최근 당대회를 통해 「카다르」에서 「그로스」로의 서기장교체를 민주적으로 해냈다.
체코도 지난해말 서기장 교체와 함께 최근에는 개혁내각으로 재개편했고 국영기업법 등을 제정, 경제개혁의 법률적 기반조성을 마무리했다.
폴란드에서도 최근 내각개편을 통해 개혁파를 대거 등용했고 오는 12월에는 개혁이 필요한 시대에 당의 지도적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주제로 한 「이론과 이데올로기회의」를 열어 비당원까지 참여시킬 계획이다.
당의 역할조정에 관해서는 체코와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이는 당이 지도성을 유지하되 사회 각 부분에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사회주의적 다원주의」혹은 「열린 사회주의」를 지향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동구전반의 이같은 변화는 그동안 개혁을 일관되게 외면해온 동독·루마니아·불가리아에도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리라 보인다.
더우기 이번의 특별당대회는 TV를 통해 동구제국에 생중계 될 것이며 신문판매대에서 팔리고 있는 소련신문들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이렇게 볼때 「고르바초프」가 이번 특별당대회를 통해 그의 입장을 강화할 경우 동구권에는 한층 더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동구권국가들이 이번 대회에 깊은 관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도 그런점 때문이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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