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야구처럼 배구 인기 토스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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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의 9년 아성을 깬 김호철(51.사진) 현대캐피탈 감독의 마음엔 배구뿐이다. 그의 부인(임경숙)은 여자배구 국가대표 세터 출신이고, 그의 성격을 닮아 김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딸 미나(22)도 이탈리아 프로팀 만토바에서 세터로 뛰고 있다. 김 감독의 아들 준(18)은 골프 선수(이탈리아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3일 경기도 용인의 현대캐피탈 숙소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아직 상기돼 있었다. 우승의 한을 푼 그는 "이제는 한국 배구의 부활을 위해 뛰겠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천부적으로 공을 잘 만졌다. 뛰어난 재질을 알아본 대신중 박덕고(작고) 감독은 혹독하게 조련했다.

"한 번은 네트 위 27㎝, 또 한 번은 네트 위 32㎝ 높이로 토스하라고 주문했어요. 자로 잴 수도 없는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저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정교하게 배구를 가르치셨습니다."

1975년 국가대표가 됐고, 78년 주전 세터로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4강에 올랐다. 그 인연으로 이탈리아 프로팀에 진출했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 하던 정도의 세트 플레이를 보여주니 다 속아넘어가데요. 큰 대회에서는 평소와 다른 기술을 쓰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이 '김호철이는 몇백 가지 기술이 있다'고 말합디다." 그의 별명은 마니도로(황금의 손), 마지코(마술사)였다. 은퇴 후 이탈리아에서 감독생활을 하던 그는 2004년 한국에 왔다.

삼성화재에 연패하던 현대가 "김 감독이 안 오면 팀을 해체하겠다"고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위약금을 물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독종이다. 약체 상무에 지고 선수들이 편히 자는 것을 보고 격분해 일주일간 자정까지 훈련을 시켰다.

"패배의식을 없애는 것이 최고 목표였습니다. 선수들이 뒤에서는 다 나를 욕했을 겁니다."

그래도 정은 깊다. 김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우승했을 때는 이탈리아 국가가 나와 내 팀이 아닌 것 같았는데 친정팀에서 우승하니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 독한 감독 밑에서 고생한 선수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부인과 가족은 지금 이탈리아에서 산다. 주말부부.월말부부가 아니라 연말부부다. 지난달 23일 한국에 온 부인에 대해 김 감독은 "이제 남자 힘이 더 떨어지기 전에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 바둑이처럼 꼬리 흔들고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12월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선전한 야구나, 2002 월드컵에서 기적을 일군 축구처럼 배구 인기도 한번 쭉 올려보겠다"고 말했다.

글=성호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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