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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서 달려온 여자 '외인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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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나주대 여자 야구팀 선수들이 이경훈 감독(뒷줄 왼쪽에서 셋째)과 포즈를 취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여름·김수미 선수, 이 감독, 이유영·이민정·정이술·김혜점·박정희·이오영·손금순·박형옥·조혜미 선수. 나주=장정필 프리랜서

지난달 27일 오전 8시50분쯤 전남 나주시 영산포 시민공원 야구장. "가자! 가자!… " 선수들의 힘찬 구호가 울려퍼졌다.

감독이 배트로 친 공을 2루수가 가랑이 사이로 빠트리자 금세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몸을 더 낮추고 볼에서 눈을 떼지 말란 말이야."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2루수는 곧장 감독이 취한 수비자세를 따라 했다.

야구장 한켠에선 3명의 투수가 투구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감독은 선수들이 던지는 공을 스피드 건으로 체크하며 일일이 자세를 교정해 줬다. 투구 속도는 시속 100~110㎞. 변화구도 제법 된다.

나주대가 전국 처음으로 창단한 여자 야구팀의 훈련 장면이다. 이 팀은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야구선수였던 이경훈(42) 감독이 지난해 8월부터 전국 사회인 여자 야구 동호인 13명을 스카우트해 만들었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 선수들은 서울.부산.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모인 외인구단이다. 하나같이 야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게 공통점이다. 일부는 야구 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품고, 일부는 장차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는 포부를 안고 생업을 뿌리친 채 야구에 전념하고 있다.

외야수 이경옥(32)씨는 "최소한 4~5년 후에는 기업들이 후원하는 클럽 형태의 여자 야구팀이 많이 생길 것 "이라며 "그때 지도자로 활약하고 싶어 사진작가 생활을 잠시 접었다"고 말했다. 유일한 유부녀이자 '왕언니'로 통하는 박형옥(52.외야수)씨 역시 마찬가지. 남편의 외조 덕에 거주지까지 부산에서 광주로 옮긴 그는 "대학 졸업 후 여자 야구선수들을 양성하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선수들의 면면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주장 조혜미(30)씨는 여상을 졸업하고 전북은행에 다니다 야구팀에 합류했다. 그는 2년 전 광주의 야구 동호인회인 '스윙'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장타력이 있고 작전수행 능력 등 센스가 뛰어난 선수"라는 게 이 감독의 평가다.

단국대 체육과를 졸업한 뒤 유통업체에 다니다 나주대에 입학한 투수 이유영(27)씨는 고등학교 때 배드민턴 선수였다. 어깨가 강해 시속 110㎞의 강속구가 특기고 낙차 큰 커브도 자주 구사한다. 이씨의 친동생 민정(24)씨도 같은 팀에서 투수로 뛰고 있다.

내야수 김주현(37)씨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했고, 김혜점(27)씨는 태권도 유단자로 세계 여자 월드컵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외야는 계명전문대 하키선수였던 김수미(23)씨, 부산에서 건축업체에 다니던 박정희(27)씨, 중.고교 때 배구선수였던 손금순(38)씨 등이 맡고 있다. 팀의 막내인 정이슬(20)씨는 야구에 대한 이론이 프로 수준이며 빠른 발이 무기. 그는 "국가대표가 돼 여자 야구 월드컵에 참가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52세부터 20세까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선수들이 함께 운동을 하지만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주장 조씨는 "왕언니가 어찌나 체력이 좋은 지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나주대 사회체육학과 06학번인 이들은 평소엔 오전 수업을 받고 오후 1시부터, 시합이 있을 때는 오전부터 연습을 한다. 기숙사에서 합숙생활을 하는 이들의 등록금은 대학과 광주.전남 여자야구협회가 지원하고 있다.

나주=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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