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시대의 분단문학|정규웅(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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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1년초 거의 때를 같이하여 발표된 최인훈의 장편소설『광장』과 이호철의 단편소설『판문점』은 이른바 분단문학의 새로운 장을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관심을 모았었다. 분단문학으로서 이들 두 작품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분단이데올로기를 편향적인 논리로만 수용해오던 우리 문학이 이들 작품에 이르러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잘알려져 있다시피『광장』은 대학의 철학과 학생인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남한의 개인주의와 북한의 도식주의를 함께 비판하고 있으며,『판문점』은 남한의 통신사기자와 북한의 여기자를 등장시켜 사상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한의 이질감을 극복해 보이려 하고있다. 말하자면 작품속에서나마 남북한을 동궤에 올려놓고 객관화를 시도함으로써 분단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의 중요성은 분단상황에 대한 그같은 작가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산출된 시대적 배경에도 있다. 이들 작품이 쓰여지고 발표된 것은 4·19혁명의 바로 뒤, 그리고 5·16군사쿠데타의 바로 전이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들 작품이 쓰여질수 있었고 발표될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사회적 혼란상에도 불구하고 이승만독재정권의 붕괴에 따른 민주화의 열기로서 가능했다고 볼수있다.
그와 같이「분단문학」과「민주화」가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음은 5·16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후 적어도 제5공화국이 종언을 고하기까지 우리의 분단문학이 소재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분단상황이 안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파헤치는데 있어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으로 잘 증명된다.
그렇게 볼때 38주년째를 맞는 금년의 6·25는 우리의 문학, 특히 분단문학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수도 있다. 분단이데올로기와 관련한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아직 심상치 않고 그에 대처하는 제6공화국 정부의 태도가 명징하지 않아 다소의 불안감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기대를 걸어볼만 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전망이 비관적이거나 지극히 불투명했던 60년 61년 80년 87년등을 포함하여 37번을 되풀이해 맞았던 그 어느해의 6·25와 비교해봐도 금년의 6·25가 갖는 희망적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화시대의 분단문학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람직한가. 물론 작가들이 분단상황에 대한 자각적 인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은 정치적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만, 민주화시대에 있어서 분단문학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작가들의 문제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 하게될 것은 작가들이 기왕의 분단의식을 어떻게 또는 얼마나 극복할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문학외적인, 곧 정치적·사회적·역사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6·25전쟁의 참상이라든가 이산가족의 문제따위와 같은 분단의 결과에만 집착해온 종래 분단문학의 자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분단의 원인에까지 천착하는 자세를 보이게 될때 분단문학의 새로운 지평은 활짝 열릴 것으로 믿는다. 그런 점에서 분단이나 통일문제에 대한 정부당국의 논리도 무조건 수용할것이 아니라 여과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민주화시대의 분단문학에 임하는 작가들의 바람직한 대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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