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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육·해·공 전투복 디자인 교수 성추행의혹…조사나선 국민대 '쉬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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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입고 지나가는 군인만 봐도, 그일이 악몽처럼 떠올라요."

국민대 졸업생 A씨는 8년 전의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듯 했다. 그는 지난 2월 24일 국민대 성평등 상담실 홈페이지에 '신고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의상디자인학과 J교수에게 당한 성추행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글을 올렸다. J교수는 패턴 디자인의 권위자로 과거 전투복 위장패턴 및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현재 육·해·공군은 물론 해병대가 입고 있는 디지털 전투복 패턴 디자인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성평등 상담실에 올라온 글로 지난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 직후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성평등 상담실에 올라온 글로 지난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 직후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의상디자인학과 06학번 A씨는 2010년 8월 어느날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졸업전시회 준비 기간, J교수는 PC화면을 보며 다른 여 교수의 설명을 듣던 A씨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한다. A씨는 "그해 6월 모친상을 당해 심약한 상태였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졸업심사에서 탈락한 A씨는 9월 J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  탈락 이유를 물었다. 당시 J교수는 복분자주를 꺼내마시며 "이 방에 들어오는 걸 누가 봤냐. 잠시 교수실 문 잠그고 이야기좀 하자"고 말했다. A씨는 "당시 두려움에 교수실에서 도망쳤고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 그를 마주칠 수 없었다"며 "졸업을 미루다 2013년에 J교수가 안식년이란 소식을 듣고 급하게 졸업했다"고 말했다. "J교수가 여학생 가슴에 디자인 재료를 넣고 꺼내는 걸 본 적도 있다"고도 했다.

2011년 군 신형 전투복 공개. [중앙포토]

2011년 군 신형 전투복 공개. [중앙포토]

실제로 J교수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A씨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이 학교 의상디자인학과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말을 종합하면 J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여학생 뒤에서 손을 넣어 겨드랑이 살을 꼬집는 행동을 일삼았다. 2000년대 초반 학번부터 최근 17학번 재학생까지 "입학하면 선배들이 'J교수를 조심해라. 절대 면담할 때는 맨다리로 가지 마라. 뭐라도 두르고 가라'고 당부했다"고 입을 모았다.

졸업생 B씨는 2009년 8월쯤 졸업전시회 준비중 J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B씨는 "당시 J교수가 밤늦게까지 교수실에서 작품 검사를 해서 옷을 직접 입고 설명을 하는데 교수가 옷 속에 손을 넣고 가슴을 만지더라"면서 "하체로 손이 내려갔고 내게 계속 설명하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더 당할 것 같아 아프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고 말했다. B씨는 최근 학교에 피해사실을 알렸다.

서울 성북구 소재 국민대학교.

서울 성북구 소재 국민대학교.

학교 측은 글 작성자인 A씨에게 연락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3월 8일 A씨는 학교에 최초 진술서를 제출했다. 지난 14일 교원부장 등 관계자와 23일에는 학내 꾸려진 진상조사단과 면담했다. A씨는 "징계를 검토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하다"는 성평등 센터 이야기대로 추가 피해자들을 모았다. 학교 측에 피해 사실을 진술한 졸업생은 A씨를 포함해 4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에 따르면 학교는 이 과정에서 사립학교법상 '징계사유의 실효에 관한 규정'을 들며 '3년 또는 5년이 경과한 일에 대한 징계는 어렵지만 재학생 전수 조사를 하겠다' '재학생 피해자가 없다면 권고사직을 권하겠다. 다만 J교수가 거부할 경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학교 측 "해당 교수 감싸지 않는다"고 하나 대처는 '쉬쉬' 

오래 전부터 이어진 J교수의 '손버릇'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복수의 의상디자인학과 재학생들은 "여전히 여학생 겨드랑이는 대수롭지 않게 만지고 엉덩이를 치거나 배를 만지기도 한다"며 "학생들에게 '넌 왜 이렇게 가슴이 작냐'는 말을 하거나 '뽀뽀해주면 늦어도 괜찮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14일 학교 측은 재학생 피해 전수조사를 한다는 걸 알려왔고, 학생회는 협조 의사를 밝혔지만 2주 동안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측이 A씨에게 보낸 진상조사단 참여 문자메시지.

학교측이 A씨에게 보낸 진상조사단 참여 문자메시지.

학교 진상조사단 일원인 변호사 출신의 한 법학과 교수는 지난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학교는 객관적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며 결코 해당 교수를 감싸지 않는다. 도의적 책임에는 시효가 없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는 사건이 외부로 알려질까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제로 학교 성평등 센터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를 한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외부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글을 지워도 되겠냐"고 묻고 해당 글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또한 A씨에 따르면 진상조사단은 면담 도중 A씨에게 "J교수는 자신이 졸업을 결정할 힘이 없다는데 그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말해보라"며 증명을 요구했다. A씨는 "업계에서 잘 나가는 J교수가 유명디자이너들과 친하고, 군복도 디자인해 고위 관계자들과 친하다는 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 협의회 대표는 "교수와 학생은 상하ㆍ권력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피해 당시 상황과 맥락 파악이 우선"이라면서 "학교는 질문 의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야하고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2차 가해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의상디자인학과가 소속된 조형대학 건물 전경.

의상디자인학과가 소속된 조형대학 건물 전경.

J교수는 2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겨드랑이를) 꼬집은 행동은 있었는데 심하게 추행한 적은 없었고, 진상조사단 통해 조사받았다"면서 "(피해를 주장하는)졸업생들을 좀 만나보고 싶다. 내가 다정하게 한 행동들에 경솔함이 있었지만 추행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미투 운동의 물결 속 과거의 악몽을 꺼냈다는 A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군복만 보면 그 일이 생각난다. 학창시절 꿈꿔왔던, 어렵게 들어온 학교에서 J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내 삶은 지워졌다" 말했다. B씨는 "미투 고발이 시작될 때 유독 하얗고 통통한 여학생들 겨드랑이를 만진 그가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시 일어서야지' 마음먹고 공모전에 나가면 J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있었고, 대학원에 갈까 했지만 역시 J교수가 있었다"면서 "학교는 사랑하지만 해당 교수가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고 전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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