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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USTR “환율조작 금지 합의” … 정부 “FTA 협상과 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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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개정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는 모습. 정부 관계자는 이와는 별개로 29일 ’한·미 FTA와 환율 협상 간 연계는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1]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개정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는 모습. 정부 관계자는 이와는 별개로 29일 ’한·미 FTA와 환율 협상 간 연계는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1]

“한국의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합의가 마무리되고 있다.”(미국 무역대표부)

환율 연계 놓고 한·미 다른 얘기

“환율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있는 것처럼 포장했다.”(기획재정부)

한·미 FTA 개정 협상에 양국이 사실상 합의했지만,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환율을 두고서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미국의 새 무역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성과’ 자료에서 “(미국 재무부와 한국 기획재정부가 협상을 통해) 경쟁적 평가 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를 마무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날 “한·미 양국이 FTA 개정에 합의하면서 환율 정책과 관련한 부가적인 합의도 했다”라며 “한국은 원화의 평가 절하를 막아 환율 개입의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미 “한국, 환율 개입 투명성 높일 것” 

한국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미국 측 주장에 예민하게 나온 분야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미 FTA와 환율 간 연계는 없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미 FTA 협상과 환율 협의는 별개”라며 “환율은 미국뿐 아니라 다자간 문제인데 양자협상인 FTA와 환율을 연계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를 들어 한·미 FTA 개정 협상 때 환율 협상을 연계하려는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발표 시 환율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라는 게 정부 주장이다.

한·미 FTA 재개정

한·미 FTA 재개정

미국도 이를 인정한다. 백악관도 28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미 FTA 개정 협상과 별도로 불공정한 통화 정책 부문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로 한국이 원화의 평가 절하를 금한다고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미국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가 달러 당 원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겠다는 뜻이다(원화 평가 절상). 이는 정부가 나서 환율 정책 방향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꼴이 된다. 원화 환율이 절상되면 한국 제품의 대(對)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한 “환율은 다자간, FTA 양자간 문제”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외환 시장이 투기꾼의 먹잇감이 되는 데다 ‘환율 주권’을 부정하는 꼴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환율 정책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라며 “미국과 환율의 방향성을 합의하는 건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해 ‘투명성을 높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고판 내용을 공개하는 방안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한 안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뿐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합의’가 아닌 ‘협의’이며, 한·미 FTA 개정과 무관하게 미국 및 IMF와 지속해서 협상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1962년 외환시장 문을 연 이후 숨겨둔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를 정부가 추진하는 건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미국이 교역을 많이 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환율조작국을 뜻하는 ‘심층분석 대상국’과 그 아래 단계인 ‘관찰 대상국’을 정한다.

지정 조건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외환시장 개입 규모 GDP 대비 2% 초과 등 세 가지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 발표 당시 앞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외환시장 개입 규모는 GDP 대비 0.3% 수준이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의 정부 조달시장 진출 제한 같은 제재를 당한다. 수출 호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기재부 “외환정책은 한국 고유 권한” 

외환 시장 개입 내용 공개의 실효성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부진 등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는데 자칫 쓸 수 있는 카드를 제약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규돈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시차를 두고 공개한다면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정부의 대응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환율은 관세보다 더 중요한 경제변수가 될 수 있다”라며 “미국이 환율을 FTA와 연계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기재부와 산업부 등 관계부처가 협력해 대응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은 공개 추진 

환율 이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김현종 본부장은 “농업 분야의 ‘레드라인’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농업 분야 추가 개방이 없다는 의미다. 반면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농업 분야에서도 진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발표와 결이 다르다.

USTR은 또 “2018년 이내에 한국이 약가(수입 신약 가격)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며 ‘시한’을 명시했다. 반면 김현종 본부장은 기간을 밝히지 않은 채 개선 검토의 뜻만 내비쳤다. 김 본부장은 “미국 측에서 요구한 것은 국내 제약회사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제약회사 간 차별을 철폐해달라는 것”이라며 “검토 결과 내국민 대우 위반일 경우에는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장원석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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