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언의 직격 인터뷰

“중국 먼지가 서해 넘을 때 미리 국내 저감조치 발동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폭죽 연구’로 중국발 미세먼지 입증한 정진상 연구원

정진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미세먼지 실시간 분석 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진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미세먼지 실시간 분석 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0일 ‘미세먼지 중국에서 온 것이 입증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지난해 중국 춘절 기간(1월 27일∼2월 2일)에 중국인들이 터뜨린 폭죽에서 나온 오염물질이 한국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높였음이 측정을 통해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폭죽에 의한 한국 공기 질 악화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나온 오염물질이 한국까지 그대로 날아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붙었다. 뉴스 소재가 된 ‘폭죽 연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연구팀(5명)의 성과였고, 이는 국제학술지 ‘대기환경(Atmospheric Environment)’에 게재됐다. 논문이 공개되자 “중국이 범인이라는 첫 증거 포착”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동시에 학계에선 “중국이 문제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논문 작성을 주도한 표준연의 정진상(41) 가스분석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을 27일에 만나 연구의 의미와 미세먼지 대책 등을 물었다.

폭죽 연구는 8년간 준비한 작업 #중국에 제시할 증거 확보 의미 #중국발 먼지 양은 알 수 없지만 #예측 프로그램 정확성에도 기여 #중국 먼지는 한국에서 입자 커져 #우리 오염원 줄여야 고농도 방지 #정체된 뒤 저감조치는 효과 적어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노후 경유차

‘중국 폭죽’ 논문이 공개됐을 때 저자가 표준연 소속이라는 게 눈길을 끌었다. 표준 연구와 미세먼지 연구가 어떻게 연결이 되나.
“표준연은 국가 측정 표준을 담당하는 곳이다. 무게·길이는 물론 특정 표준물질 등의 표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국제적 기준과 동일하게 맞추는 일을 한다. 표준적 측정법을 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소속된 가스분석센터는 가스 혼합물의 기준 농도 측정 등의 일을 하는데 6년 전부터 먼지 농도 측정값의 신뢰도를 높이는 작업도 해왔다.”
먼지 농도 측정과 미세먼지 발생 경로 추적은 별개의 작업 같은데.
“요즘 정부 돈으로 운영되는 기관의 연구원들은 대개 부수적인 연구를 한다. 정부가 사회 문제 해결 등에 기여하는 연구를 하도록 장려한다. 이미 갖춰져 있는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이다. 나는 석·박사 과정 때부터 미세먼지와 황사를 연구해 왔다.”
중국 폭죽 문화를 미세먼지 유입 확인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나.
“일본 홋카이도(北海島)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고 있던 8년 전쯤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포집한 미세먼지에 뭔가 중국에서 왔다는 증거가 있을 테니 그것을 잡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중국 공장이나 차량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중금속 물질과 한국의 공장이나 차에서 나오는 중금속 물질의 방사성 동위원소의 차이를 이용해 한국 미세먼지 중 일부가 중국에서 왔음을 규명하는 연구가 있었고, 나 역시 시도해봤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중국이 원산지임을 규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이나 우리나 어차피 중동산 원유를 수입해 쓰고 있고, 석탄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래서 뭔가 문화적·사회적 특성을 찾아내 그것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6년 전쯤 중국에서 우리의 설에 해당하는 춘절 때에 대대적으로 폭죽을 터뜨려 대기오염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오염이 한국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입증하면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한국까지 온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 뒤 6년이나 걸렸나.
“폭죽을 터뜨리면 칼륨이 나온다. 그런데 칼륨은 볏짚을 태울 때도 발생한다. 설 전후로 한국 농촌에서 볏짚 소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만약 춘절 기간과 그 직후에 한국 대기에서 칼륨 농도가 올라간 것에 대해 중국 측이 "당신들이 소각을 많이 해서 그런 것 아니냐? 우리 것이 거기까지 날아갔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 끝에 볏짚을 태우면 레보글루코산이라는 유기물질도 많이 나온다는 점을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레보글루코산은 폭죽놀이 때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춘절 뒤 한국에서 갑자기 치솟은 칼륨 농도에서 레보글루코산 증가율의 비율 만큼을 제하면 중국 영향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뒤에는 미세먼지 성분별 농도를 30분 간격으로 잴 수 있는 자동 측정장치를 만드느라 시간이 걸렸다.”
정 연구원이 사용하는 미세먼지 포집 설비. 왼편의 관을 통해 건물 밖 공기가 유입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 연구원이 사용하는 미세먼지 포집 설비. 왼편의 관을 통해 건물 밖 공기가 유입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온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중국 동부 지역에서 스모그가 심하게 발생하고 서풍이 불면 어김없이 한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고,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중국에서 나쁜 공기가 유입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중국 폭죽 연구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실제로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중국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 요인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자체적인 미세먼지 절감 노력을 경시하는 풍조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중국은 한국의 미세먼지가 자신들 것이라는 증거가 있느냐고 한다. 희뿌연 공기가 서해와 한반도 서쪽을 덮은 위성사진을 보고서도 그게 중국에서 생긴 건지 서해 상에서 생긴 건지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환경부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중국 측과 얘기할 때 내놓을 게 마땅치 않다. 들고 갈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소한 ‘들고 갈 것’ 하나는 생겼다는 의미는 있지 않나 싶다.”
이번 연구가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온다는 것은 입증했지만 언제 얼마만큼 오는 것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효용성이 별로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내 연구에 대한 확대 해석은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미를 축소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현재 미세먼지 유입 경로 추적이나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예측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오염물질 배출 정보, 기상 정보 등을 입력해 예상 수치를 얻거나 궤적을 역추적하는 작업을 한다. 이번 연구에서 얻은 여러 데이터는 이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데 쓰일 정보를 제공하는 ‘표준 케이스’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온다는 것은 이제 분명한 사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요즘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아진 날은 미세먼지 입자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미세먼지 입자가 커져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쉽게 말해 앞산이 잘 안 보이는 날은 미세먼지 입자가 평소보다 많은 것인지, 미세먼지 하나하나의 크기가 커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측정한 바로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유입돼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벌어질 때는 입자 크기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분석이 학문적으로 입증이 되면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오고 거기에 한국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붙는 바람에 입자가 커지고, 그 결과로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와 한국에서 생성되는 미세먼지가 단순히 더해지며 섞이는 게 아니라 중국발 미세먼지 입자들이 한국에서 커지는 게 고농도 현상의 핵심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 연구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연결이 되나.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에 한국의 오염물질이 붙어 입자를 크게 하는 게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게 맞는다면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올 때 최대한 국내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저감 대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일단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와서 정체되면 비상저감조치를 발동한다. 이것을 미세먼지가 한반도로 날아올 때 선제적으로 발동하도록 정책을 바꿔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입자를 키울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게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냄새가 집에 다 배이도록 한 뒤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할 때 주방 후드를 작동시키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김순태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도 “비상저감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서 한국 내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미리 줄여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유입되기 직전에 저감조치를 발동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시점을 딱 맞추기가 어렵지 않겠나.
“예측은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위성 사진과 한반도 기상 상황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면 중국발 미세먼지의 이동 경로와 속도 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철한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미세먼지 모델(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매우 정교해졌다. 중국에서의 유입량과 그에 따른 한국에서의 농도 증가 상황을 상당히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줄이는 방법은.
“중국에 목소리 높여봐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를 무서워하나. 그 대신 ‘우리가 이런 것을 해봤더니 효과가 좋더라’ 식으로 유도해야 한다. 중국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커가고 있다. 공기 질 문제도 10년쯤 뒤에는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국 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현재 가장 큰 오염원은 노후 경유차(현재 기준은 2006년 이전 출시)다. 오염물질도 탄소 알갱이라서 건강에 제일 나쁜 축에 든다. 경유차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신형 차량은 측정해 보면 휘발유 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환경단체 등은 화력발전소가 원흉이라고 한다. 정말인가.
“그 부분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화력발전소가 문제라면 중국에서의 미세먼지 유입이 별로 없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을 때 화력발전소가 있는 태안·당진의 미세먼지 농도가 인근 지역보다 높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나타나는 측정치를 본 적이 없다.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설비가 잘 갖춰져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세먼지 연구와 대책 수립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전문가로 알려진 분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할 때가 많다.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 주장을 해야 하는데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목소리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기상 전문가들이 기후변화가 미세먼지 농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 주면 좋겠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봄에 한반도 위에 고기압이 정체되는 날이 많아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미세먼지 해결은 더욱 어렵게 된다.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정진상 책임연구원은 …

한동대 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황사와 미세먼지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홋카이도(北海島)대에서 박사후과정으로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화학적 분석 방법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가스분석표준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과학기술연합대 측정과학과 부교수직도 겸임하고 있다. 2006년에 중국 정부의 대기 질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지난해에 한국 정부가 만든 ‘미세먼지 국가전략프로젝트 사업단’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