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세정의 직격 인터뷰

유턴한 신발 기업들, 꽃피는 '부산의 봄'을 다시 만들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부산은 1980년대 말, 90년대 초까지 '세계 최대 신발 메카'였다. 숙련공의 노동집약도를 최적화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세계 1위 기지였다. 하지만 80년대 말 민주화 물결을 탄 노동운동 와중에 임금이 단기간 폭등하면서 부산의 신발 산업은 뿌리째 흔들렸다. 결국 92년 8월 한·중 수교를 전후해 부산의 신발 기업들은 저임금을 찾아 중국 등 해외로 엑소더스처럼 떠났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공장 옆 상설 전시및 판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장세정 기자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공장 옆 상설 전시및 판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장세정 기자

 ‘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라고 했던가. 황하든 낙동강이든 시간이 흐르면 물길이 바뀌듯, 신발 산업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재단사·재봉사 등 숙련공 '형제자매'를 남겨두고 떠났던 기업들이 하나둘씩 옛 둥지를 찾아 돌아오고 있다. 오륙도가 아니라 가덕도를 돌아서, 부산항이 아니라 부산신항으로.
 이들의 유턴은 금의환향(錦衣還鄕)이 결코 아니다. "13억 중국인들에게 한 켤레씩만 팔아도 떼돈 번다"고 했지만 중국시장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큰 손실을 본 기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부산에서 '신발 산업의 르네상스'를 꿈꾼다.

신발 기업들이 많이 몰려 있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옆 부산 신항 전경. [자료사진]

신발 기업들이 많이 몰려 있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옆 부산 신항 전경. [자료사진]

 새벽 기차를 타고 도착한 부산에서 기자가 권동칠(63) 트렉스타 대표를 만난 날은 마침 봄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1988년 부산 사상에서 창업한 그는 95년 중국 톈진(天津)으로 떠났다가 21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온 '유턴 기업인'이다.
 -중국으로 갔던 이유는 단지 저임금 때문이었나.
 "95년 당시 부산 공장에 종업원 800명이 연간 1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한국 공장은 1인당 월 140만원을 줄 때였는데 당시 중국은 월급이 약 80달러였다. 미국과 프랑스 업체에 납품해왔는데 늘어나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OEM 바이어가 인건비가 싼 중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권유했다. 당시로선 중국 진출이 불가피했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부산 공장에서 생산중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부산 공장에서 생산중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중국은 사업하기 좋은 나라 아니었나.=진출 초기에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 한국 노동자의 생산성이 100이라면 중국인은 65 정도였지만 중국은 노동시간이 매우 유연했고, 초과근무 개념도 없었다. 8시간씩 2교대로 매주 7일을 가동했다. 중국 정부도 기업의 애로사항을 거의 다 들어줬다.
 -21년 만에 중국을 왜 떠나야 했나.=베이징올림픽이 열린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신노동법을 계기로 최저임금이 매년 15% 정도씩 급격히 올랐다. 2016년에는 1인당 월급이 약 900달러까지 치솟았다. 6대 보험도 의무화됐다. 정부의 지원은 대부분 사라졌다. 한국보다 주 5일 근무가 먼저 도입됐고 복지혜택도 계속 늘어나면서 비용 부담이 급증해 경쟁력을 잃었다. 초기 5년간 면제였던 법인세 혜택도 없어졌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2016년 말에 중국 현지인에게 공장을 매각했다. 100만 달러를 투자해 21년간 500억원 이상을 손해 봤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AP=연합뉴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AP=연합뉴스]

-중국 정부나 당 간부들이 붙잡지 않았나.=진출 초기에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공장까지 공안(경찰)차량과 오토바이가 귀빈처럼 호송했다. 구청장·시장은 한국 기업인을 만나면 '투자와 고용을 많이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가장 전성기였던 98년 우리 공장에 6000명이 일했다. 톈진에 소재한 수출기업 중 매출 2위(2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빠르게 달라졌다. 경찰차 호송도 사라지고 구청장이나 당서기조차 '바쁘다'며 만나기를 피했다.

중국의 힘을 과시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주경기장.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중국의 힘을 과시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주경기장.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철수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2015년 8월 톈진 빈하이(濱海)신구(新區)에서 화학물질 창고 폭발사고(173명이 숨진)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당시에는 인력이 1000명으로 줄었지만 관할 소방 당국은 화학제품을 사용하니 혹시라도 대형 불이 나면 골치 아프다며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무작정 요구했다. '소방 설비에 문제가 많다'며 벌금을 100억원 정도 물리겠다고 했다. '떠나라'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톈진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려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저임금을 노리고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베트남 근로자들 모습. [연합뉴스]

저임금을 노리고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베트남 근로자들 모습. [연합뉴스]

-베트남·인도네시아가 아닌 한국으로 되돌아온 이유는.=중국 노동자 월급이 900달러라면 베트남은 250달러, 한국은 1500달러다. 한국 노동자의 숙련도가 베트남보다 30% 정도 높더라도 한국인의 인건비는 베트남보다 5~6배가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로봇을 투입해 생산라인을 자동화하면 한국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베트남에서 100명 고용할 일을 한국에서는 자동화로 30명만 고용해도 충분하다. 자동화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제조업 원가의 개념이 바뀌었다. FTA로 미국·EU 시장으로 가는 관세가 없고 한국 공장은 물류비 등 다른 비용 절감이 가능해 생산 원가가 오히려 약간 낮아질 수 있다. 공장과 시장이 가까워 소비자 반응을 봐가며 생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 유리하다.

23년만에 독일로 유턴한 아디다스가 만든 스피드팩토리 [사진 아디다스]

23년만에 독일로 유턴한 아디다스가 만든 스피드팩토리 [사진 아디다스]

 권동칠 대표가 언급한 자동화에 대해 김명훈(58) 한국신발피혁연구원 생산기술연구단장은 독일 아디다스 사례를 들면서 공감을 표시했다. 김 단장에게 물었다.
 -한국도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아졌다. 유턴한 신발업체들이 과연 베트남과 경쟁이 가능할까.=1993년 독일 공장을 폐쇄하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했던 아디다스가 23년만인 2016년 독일로 유턴해 인스바흐 시에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speed factory)를 세웠다. 그 사이 스마트폰 보급 등 정보통신기술(ICT) 혁신 등으로 산업 판도에 변화가 생기면서 가능했다. 이런 흐름을 읽은 독일은 아디다스·지멘스와 아헨 공대 등 23개 기관이 힘을 합쳐 스피드 팩토리 프로젝트에 2013년부터 3년간 650만 유로(약 85억원)가 투입했다. 이 공장은 지능화된 로봇을 활용해 10명이 연 50만개의 맞춤형 신발을 생산한다. 주문부터 생산까지 3개월 걸리던 제작 기간을 5시간으로 단축했다.

김명훈 한국신발피혁연구원 생산기술연구단장은 자동화가 유턴기업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김명훈 한국신발피혁연구원 생산기술연구단장은 자동화가 유턴기업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유턴기업'은 자금력이 부족한데 자동화 여력이 있나.=기업이 개별적으로 자동화 설비를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트렉스타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아 자동화 설비를 갖추는 중이다. 신발 생산에서 접착 공정의 비용은 5% 정도를 차지하지만 접착 불량이 발생하면 완제품 단계에서 모두 폐기해야 한다. 이를 자동화하면 품질이 균일화되고 안정된다. 공정을 크게 줄이고 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크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70명이 작업할 경우 30~40명을 접착 공정에 투입했는데 앞으로 자동화하면 10명이면 충분하다. 자동화와 별도로 올해 산업통상자원부 120억, 부산시 80억, 기업들(트렉스타·학산·삼덕통상 등) 까지 모두 합쳐 230억원을 투입해 '신발 지능형 공장'의 연구·개발에 착수한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오는 7월 첫 가동을 앞두고 새로 도입한 자동화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오는 7월 첫 가동을 앞두고 새로 도입한 자동화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자동화와 관련, 권동칠 대표는 "정부 지원(31억5000만원)과 민간(극동기계) 참여로 모두 47억3000만원을 투입해 자동화 로봇 6대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미 일부 설비가 들어왔는데, 시범 가동을 거쳐 7월 1일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올해 자동화 생산 라인에 30명(자동화 시스템을 움직일 청년 기술자 10명 등)을 고용하고, 내년엔 100명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그는 "고용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혀 없던 고용을 신규 투자로 창출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경영 전략이나 아이디어는.=사실 중국에서는 아무리 생산을 잘해도 유통과 연결하기에는 물류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생산과 유통을 연계시키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국은 고객 데이터를 반영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3차원 스캐닝 기술을 활용하면 소비자가 신발 매장에 나오지 않고도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자기 발을 찍어 보내면 자동화된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어 집으로 배송이 가능한 시대다. 외국 관광객이 오면 신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자기 발과 선호도에 맞게 디자인을 골라 주문하면 2시간 만에 제작해 호텔이나 크루즈로 배송이 가능해질 것이다.

부산경제진흥원 산하 신발산업진흥센터.

부산경제진흥원 산하 신발산업진흥센터.

 돌아온 유턴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략 13개 정도 된다고 업계는 잠정 추정한다. 하지만 공식 통계는 잡히지 않고 있다. 돌아왔지만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자가 부산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까다로운 유턴기업 지정 요건(해외 공장 10년 증빙서류 등)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아웃도어 신발 전문업체인 (주)학산 이동영(35) 대표는 "중국 현지에서 공식적으로 청산 절차를 밟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청산 확인 서류를 발급받아 한국에서 유턴기업으로 공식 인정받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2004년 중국 칭다오(靑島)에 70만 달러를 투자한 학산은 2013년에 청산을 시도했으나 법적으로 청산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지 정부가 "지난 10년간 감면 받은 세금(30만 달러)을 모두 토해내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결국 종업원 급여를 모두 지급하고 2016년에야 중국을 떠날 수 있었다.

입사 3년차 이애림(오른쪽) 디자이너와 자체 브랜드인 비트로의 새 디지안을 점검하는 이동영 학산 대표.

입사 3년차 이애림(오른쪽) 디자이너와 자체 브랜드인 비트로의 새 디지안을 점검하는 이동영 학산 대표.

 이런 우여곡절 끝에 유턴한 한국 기업들은 고향 땅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유턴기업인들에게 동시에 물었다.
 -미국·독일·일본처럼 한국 정부도 유턴기업을 적극 지원하나.=공장용지 갖추고 건물 짓도록 지원해준다고 유턴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 제대로 된 유턴기업의 성공 사례가 없는 실정이다. 외국에서 돈을 벌어서 돌아오는 유턴기업은 없고 대부분 손실을 보고 온다. 스스로 1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지으면 10억원을 지원하는 매칭펀드 구조다. 대부분의 유턴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없어 거의 지원을 못 받는다. 미국의 경우 유턴기업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공장 짓고 고용하는 자국 기업에 납품 기회를 보장한다. 한국은 최저가 입찰제 때문에 정부조달 물품조차 값싼 수입품을 계속 납품받는다. 결국 외국 공장들 좋은 일만 시키고 오히려 국내 업체는 홀대한다. 일본·독일은 자국에 제조업 공장을 키우니까 일자리가 넘쳐난다.

정상옥 나노텍세라믹스 대표는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며 부산 신발업체가 자체 기술력과 스토리를 갖춘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장세정 기자

정상옥 나노텍세라믹스 대표는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며 부산 신발업체가 자체 기술력과 스토리를 갖춘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장세정 기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사처럼 부산항을 떠났던 기업들이 하나둘 다시 돌아오는데, 부산의 신발 산업에 진짜 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권동칠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국으로 갈 때와 달리 지금 우리에게는 자체 브랜드가 생겼다. 우리가 유턴기업 중에 일종의 '퍼스트 펭귄'이다. 모두가 지켜보는데 잘할 수 있다. 자동화로 탄력을 받으면 많은 기업이 우리처럼 유턴하려 할 것이다. 부산에 제2의 신발 산업 르네상스가 머잖아 올 것이다."

[장세정의 직격 인터뷰]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 등 #부산으로 돌아온 '유턴 기업인'들 #세계최대 '신발메카' 부산기업들 #고임금 피해 중국으로 엑소더스 #20년만에 다시 부산으로 유턴중 #업계 추산 지난해까지 약 13개 #유턴기업 지정 요건 까다로워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 참고 #로봇 투입한 자동화로 승부수 #자체 브랜드에 스토리 입혀야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자체 개발 브랜드 제품의 홍보 문구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가 자체 개발 브랜드 제품의 홍보 문구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부산=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사진

장세정 논설위원 사진


※황병준 인턴이 이 기사의 영상 편집작업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