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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데이트] '독서왕' 우리 아이, 읽은 책 알고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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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반갑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책을 얼마나 읽고 있을까.[사진 중앙포토]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반갑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책을 얼마나 읽고 있을까.[사진 중앙포토]

 초등학교 학부모 여러분들, ‘안녕’하신가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다 지났습니다. 요즘 학교에선 독서를 강조합니다. 매주 독서록 쓰기 숙제를 내거나, 아이 편에 ‘권장도서’ 혹은 ‘필독서’ 리스트를 보내는 곳이 많습니다. 덩달아 학부모들의 고민도 깊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주로 읽는 책, 어떤 걸까요?


 한 해 독서량 초등학생 67.1권, 어른 8권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2017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4~6학년)은 1년 평균 67.1권의 책을 읽습니다. 만화와 수험서, 교과서를 제외한 결과입니다. 성인(8.3권)의 약 8배고, 중학생(18.5권)이나 고등학생(8.8권)과 비교해도 많습니다.

 추이로 보면 우리 아이들의 책 읽기는 감소했습니다. 2013년 초등학생들의 연간 독서량은 65.1권이었는데 2015년 70.3권으로 올랐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67.1권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을 포함한 학생들은 독서를 못 하는 이유로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9.1%)",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21.1%)"에 이어 "휴대전화·인터넷·게임 때문(18.5%)"을 꼽았다고 합니다.

 한국출판연구소 김종명 연구원은 “생애주기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등학생 시절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다고 봐야 한다”며 “아동 서적이 성인 책보다 얇아 읽기 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부모와 학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은 책을 좀 덜 읽는 추세입니다. 초등학생 연간 독서량은 2013년 65.1권에서 2015년 70.3권으로 올랐다가, 지난해 67.1권으로 줄었습니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독서를 못 하는 이유로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29.1%)”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21.1%)”에 이어 “휴대전화ㆍ인터넷ㆍ게임 때문(18.5%)”을 꼽았다고 합니다.

학습만화에 빠진 아이들

초등학생들은 그래서 어떤 책을 많이 읽을까요? 지난해 전국 660여 개 공공도서관의 대출 1~100위 책을 찾아봤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지난해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책은 호주 유명 아동작가인 앤디 그리피스가 쓴 『나무 집』시리즈였습니다. 대출 1위(『52층 나무 집』)부터 6위(『78층 나무 집』)가 이 시리즈였습니다. 그 외 일본의 다나카 요코가 ‘트롤’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후카사와 마사히데씨가 그림을 그린 『엉덩이 탐정』시리즈(7ㆍ10위), 박정섭 작가의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54위), 마카엘 엔데의 『마법의 설탕 두 조각』(84위), 고희정 작가의 『어린이 과학 형사대 CSI 1권』(97위)를 제외한 89권은 다 학습만화였습니다.

학습만화 가운데 순위가 가장 높았던 건『마법천자문』시리즈(8ㆍ9위)였고, 대출 순위 100위 안에 이름을 가장 많이 올린 건 『코믹 메이플 스토리 수학도둑』시리즈(총 33권)이었습니다. 여기에『내일은 실험왕』 시리즈(총 20권)와 『내일은 발명왕』시리즈(총 14권), 『마법천자문』 시리즈(총 16권)까지 총 4개의 학습만화 시리즈(총 83권)가 사실상 초등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셈입니다.

 10위 권에 유일하게 든 학습만화는 『마법천자문』시리즈(8·9위)였습니다. 학습만화 가운데서 100위 권에 이름을 가장 많이 올린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코믹 메이플 스토리 수학도둑』시리즈(33권)이었습니다. 『내일은 실험왕』 시리즈(20권)와 『내일은 발명왕』시리즈(14권), 『마법천자문』 시리즈(16권)까지 총 4개의 학습만화 시리즈(총 83권)가 100위 안에 든 것이죠. 사실상 이 4개 시리즈가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서점 판매순위에서도 ‘강세’

빌리는 책 말고 사는 책은 어떨까요? 온라인 서점 YES24의 지난해 어린이 책 매출 순위 100위를 찾아봤습니다. 이중 학습만화는 총 39권에 불과했습니다. 도서관 대출 결과와 차이가 크게 나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빌리지만, 책을 살 땐 상대적으로 지갑을 여는 부모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판매순위에서도 학습만화의 인기는 높았습니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시리즈가 1~3위와 6위를 차지했거든요. 게임 만화인『스페셜솔져 코믹스 1』(7위)과  『좀비고등학교 코믹스』시리즈(8ㆍ10위)가 10위권에 든 것도 눈길을 끕니다.

일반 서적으로는 『78층 나무 집』(4위)과 박성우 글, 김효은 그림의 『아홉 살 마음 사전』(5위)만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의 홍보 담당 이선미 대리는 “학습만화는 대체로 시리즈 형태로 출간되는데 아이들은 1권을 보고 나면 2권ㆍ3권을 이어보기를 원한다 ”며 “시장이 커지다 보니 학습만화에 뛰어드는 출판사가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유아기가 지나면 책 선택권은 아이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독서 편식'을 피하려면 독서습관이 자리잡는 초등학생 시기에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중앙포토]

유아기가 지나면 책 선택권은 아이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독서 편식'을 피하려면 독서습관이 자리잡는 초등학생 시기에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중앙포토]

엄마가 말하는 '학습만화' 속마음

“엄마, 딱 한 권만 더 읽으면 안돼요?”

자야 할 시간을 넘겼는데, 민지(가명)가 또 조르기 시작합니다. 엄마 이혜경(38ㆍ서울 마포구)씨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잠도 안자고 책 읽겠다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실 분들 있지만, 엄마 마음은 다릅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민지가 읽고 싶어 하는 것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학습만화’라는 타이틀을 단 만화책입니다.

5학년 혜미(가명) 엄마 노유미(40ㆍ서울 양천구)씨의 걱정도 비슷합니다. 혜미는『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와 세계 탐험 학습만화인 『보물찾기』 시리즈에 푹 빠져있습니다. ‘과학에 역사ㆍ세계사까지 쉽게 풀어놓은 학습만화라니, 안보는 것보다 낫겠지’ 싶다가도 ‘너무 흥미에 치우쳐 단순한 문장에만 길들여지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는 군요.

학습만화를 읽히는 엄마와 읽히지 않는 엄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학교와 학원 숙제가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 전 30분이라도 손에 책을 든다는 생각에, 아이가 학습만화 보는 걸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예요. 관심사와 키워드를 좇아 비슷한 분야의 책으로 계속 확장해가며 읽는 게 중요하잖아요. 지금은 학습만화를 많이 봐도, 책을 좋아하게 되면 앞으로 글밥 많은 문고판이나 지식 서적을 읽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학습만화 편식이 심한 건 그래도 고민이긴 하지만요.”
-‘학습만화’를 읽히는 이유, 민지 엄마 이혜경 씨

“개념을 잡기 어려운 과학은 학습만화가 괜찮은 것 같아요. 역사도 만화로 구성한 책은 재미가 있어 아이가 잘 보고요. 하지만 학습만화도 만화라고 생각해요. 그냥 흥미를 주는 수준으로 만족해야죠. 지식은 역시 책으로 습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학습만화를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학습만화’를 멀리 하는 이유, 초등학교 3학년 민준 엄마 고영주(44ㆍ서울 양천구) 씨

아이들의 ‘책 편식’ 괜찮을까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년 전(1997년)에도 도서관 초등학생 대출 책 100위 가운데 60개는 학습만화였습니다. 특히『만화퀴즈』(2위), 『백두산 호랑이 왕대』(4위)와 같은 만화책이 인기몰이를 했었죠. 10년 전(2007년)에도 100위 가운데 51개가 학습만화였습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메리 포프 오즈번의 『마법의 시간여행(Magic Tree House)』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학습만화 대출이 좀 준 게 그 정도였습니다.

책과 사회 연구소 백원근 소장은 이에 대해 학습만화 자체를 나쁘게 볼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책 읽기가 한쪽으로 쏠려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편식’이라는 거죠.

“세계 출판시장에서 우리나라는 ‘학습만화의 원조’ 격으로 불립니다. 외국에 수출도 할 정도니까요.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학습만화 편식을 하다 보니 상상을 하며 글을 읽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글 많은 책을 기피하는 현상도 강해지고 있고요.

유아기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독서에 대한 부모의 입김이 강하지만, 이후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사교육을 열심히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잖아요. 중ㆍ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대학입시에 집중하느라 독서는 뒷전이 되죠. 어릴 때는 편식하고, 중ㆍ고등학생 때는 입시에 매달리다 보니, 독서의 즐거움을 알기 어려워집니다. 이 때문에 청소년 출판 시장도 빈약해졌고요.

극소수지만 학습만화 과몰입(중독)으로 글만 있는 책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도 있어요. 만화뿐만이 아니라 글로 된 책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해요. 아이들의 독서 편식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그래픽=임해든·지혜주 인턴

‘학습만화 열풍’ 그 시작은

학습만화는 어떻게 출간됐을까. 출판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덕성여대 이원복 총장의 『먼 나라 이웃 나라』(1987년 출간)을 그 ‘원조’로 꼽기도 한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어린이책 담당 김태희 MD에게 물어봤다. 김 MD는 학습만화 시장이 커지게 된 계기로 예림당의 『와이(WHY)?』 시리즈를 들었다.

[사진 YES24]

[사진 YES24]

『와이(WHY)?』 시리즈는 예림당이 기존에 냈던 『왜』 시리즈를 2001년 새롭게 출간한 책이다. 자녀에게 만화책을 권하지 않는 부모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고려해, 글쓴이와 그림작가를 별도로 하고 전문가의 검수를 받도록 했다.

책은 조기교육 열풍과 함께 ‘교과 연계가 된다’고 입소문을 타며 ‘대박’이 났고, 2005년 홈쇼핑에서도 판매됐다. 과학으로 시작한 시리즈는 한국사와 세계사ㆍ고전ㆍ인문사회ㆍ수학ㆍ인물 분야로 확대됐다. 2001년부터 올 3월까지 출간된 시리즈는 총 278종. 올해 2월 말까지 총 7500만권이 팔려나갔다. 예림당 관계자는 “우리 나라 초등학생 수(2017년 기준 260만명)를 감안하면 초등학생 1명 당 28~30권 꼴”이라고 말했다.

『와이』 시리즈와 함께 학습만화 시장의 덩치를 키운 건 2003년 11월에 출간된 아울북의 『마법천자문』이다. 이 책 개발팀은 학습만화 시장을 겨냥해 시장 조사를 했다. 마침 한자 급수시험 열풍이 불 때였다. ‘기존 한자 학습서와는 달리 한자를 적게 알려주되, 원리를 알려주는 책’을 콘셉트를 잡았고, 내용은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모험ㆍ판타지로 구성했다.

3~4개월에 한권씩 출간된 『마법천자문』 시리즈는 현재 41권까지 발간됐다. 시리즈 첫 회는 누적기준 140만부가 팔렸다. 『마법천자문』 개발팀 은지영 팀장은 “당초 한자 문화권 국가로 수출까지 노리고 기획했다”며 “학습만화 브랜드로 자리잡은 만큼, 캐릭터 사업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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