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초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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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초봄'- 정완영(1919~ )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 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벽이라기보다 유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리가 있다. 유리는 자주 닦지 않으면 앞을 가로막는 진짜 벽이 된다. 먼지 낀 유리창을 닦지 않는 것은, 타자를 거부하는 자폐증과 다름없다. 호호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자. 아니, 안경알부터 닦자. 마음의 창인 두 눈부터 씻자. 그래야 내가 보이고 네가 보인다. 그래야 문 밖에 와 있는 저 봄이 진짜 봄이 된다. 환한 새봄이 된다.

< 이문재 시인 >

◆필자 약력=▶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82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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