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설득력도 없는 싸움-고도원<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가 1주일째 헛바퀴만 돌고있다.
말 그대로 할 일은 산더미 같고 갈길은 먼데 출발부터 구덩이에 빠진채 운신도 못하고 있다. 그것도 자기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제발로 빠져들어가 발을 뺄 생각들을 않고 있다.
국회 시작때만해도 광주사태·5공화국비리조사를 최우선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6·10사태 이후엔 통일 논의의 정치권수렴을 큰소리로 외쳐왔다.
연일 도처에서 폭발하고 있는 노사문제만해도 국민의 높은 관심, 높은 기대 속에 출발할 「새 국회」가 우두커니 뒷짐지고 앉아 있을 성질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도대체 어떻게 됐는지 4당은 엉뚱한 문제에 매달려 있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회공전의 배경과 이유를 알고보면 더욱 기막힐 뿐이다. 농림수산위원장감투를 둘러싼 민정·평민당의 감정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민정당이 협상 막판에 평민당 몫으로 굳혀졌던 농림수산위를 민정당의 중요한 득표기반이 농촌이라는 이유로 다시 내놓으라고 아우성 쳤고 이에 평민당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민정당은 『정권을 내놓았으면 내놓았지 농림수산위는 못내놓겠다』는 것이고, 평민당은 농림수산위원장에 무슨 정권이라도 걸려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맞섰다.
그런 배경에 만약 어떻게든 5공비리특위 구성 등을 늦춰볼 속셈이 감춰져 있다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평민당조차 한술 더떠『특위를 먼저 구성하지 않으면 국회공전도 좋다』고 나섰다. 특위를 앞세웠지만 농림수산위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속셈이 빤한데 『공전도 좋다』는식으로 나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농림수산위원장 감투때문이라고 비난받자 평민당이 17일 양보하긴 했지만 특위 명칭을 분명히 해야한다든가 하는 논리를 자꾸 들고나올 필요가 없다. 현 시점에선 특위를 빨리 구성해서 조사를 실시하는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가는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에겐 아무래도 민정·평민당의 다툼이 명분도 없고 설득력도 약한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