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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외신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몇달동안 있었던 전직대통령 주변의 비리문제, 정부·여야당·학생들의 통일문제 제기등에서 빚어진 논란등을 보며 생각나는 우화가있다.
하나는 아기 돼지들의 소풍이란 동화다. 12형제를 소풍보내며 엄마돼지는 혹시 하나라도 뒤떨어져 길을 잃을지 모른다고 밧줄로 한데 묶어주며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집을 나선 돼지들은 강가에 이르러 배를 타고 건넌다.
하나씩밖에 탈수 없는 쪽배라 밧줄을 풀고 따로따로 건너게 됐다. 모두 건넌뒤 첫째가 다시 줄로 묶으며 헤아려보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세어봐도 11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둘째, 세째등등이 차례대로 나서서 세어봐도 하나가 모자라기는 마찬가지라 울음바다를 이루었다는 얘기다. 모두가 자기를 셈에서 빼어버린 탓이었다.
어린이들에게 그런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러나 곧잘 똑같은 현상이 빚어진다. 사회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다고 자부하는 인사에서부터 평범한 시정인에 이르기까지「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정의사회구현과 사회정화를 표방하고 나섰던 5공화국 지도자들 주변의 행동이나 민주주의와 독재타도라는 당연한 주장을 입에 올리는 시민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현상중에서도 그렇다.
5공화국 비리라는 것도 그 주역들이 항상 자신들은 잊어버린 가운데, 자신들은 예외로 한 가운데 빚어졌다. 사회정화운동을 호령하고 새마을 운동을 요리하면서 자신들은 그 운동에서 예외로 빠져 갖은 비리를 저질러도 괜찮았다.
아기돼지 12형제처럼 항상 자신만은 셈에서 빼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비단 그런 주역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비리를 나무라는「정의롭기만한」일반 시정인들은 어떤가.「나만은 괜찮겠지」라는 예외심리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규범을 어긴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때 다른사람이 새치기하는 것은 눈에 띄고 못마땅하지만 자신은 괜찮고 자동차운전자들의 혼란스런 행위도 다른사람의 잘못만 나무라고 항상 자신은 예외로 생각하는데서 빚어지고 있다.
최근 어느 대학교수가 민정당의 모임에서 광주사태의 진상에 대한 접근방법을 두고 어느 정치지도자의 관련설등 모든 가설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가 있다.
워낙 끔찍했던 일이고 민감한 문제인데다 대다수의 압도적인 여론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라 어지간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의견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이 제기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의 가설에 대한 반응의 방법이었다. 온갖 욕설과 협박이 전화를 통해 그 교수에게 전달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전화를 건 시민의 의견이 분명 올바른 것이었고 또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정의감때문이었다 하더라도 그 행동방식이 자신이 표방하는 민주적 신념과 일치하는 것이냐 하는 것은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같은 얘기지만 민주주의란 여러갈래의 다양한 얘기를 듣고 합리적인 의견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해방후 최근까지 그토록 매도해왔던 우격다짐이나 욕설속에 합리적 의견을 이끌어 내기는 힘들것이다.
영국작가「조지·오웰」의 전체주의사회를 품자한 소설『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돼지얘기가 있다.「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돼지의 주동으로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켜 착취하는 농장주인을 쫓아낸뒤 공산주의식으로 농장을 운영하게 된다.
「스탈린」식 방법으로 전권을 장악한 돼지「나폴레옹」은 모든 동물의 평등론을 내세운다.『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더욱 평등한 동물이 있다』는 평등론이다. 물론 자기자신은 예외라는 논리다.
「나폴레옹」의 이런 인식은 경우에 따라『너의 의견은 옳다. 그러나 내 의견은 더욱 옳다』는 말로 멋대로 바꿀수 있을것이다.
이는『나만이 옳다』는 정의의 독점으로 연결돼는 이야기다. 5·16군사정권이래 시민·학생들이 그토록 줄기차게 저항해 왔던 이 정의의 독점욕이 광주사태를 거론한 대학교수의 의견에 대한 반응등에서 처럼 최근 시민 자신들의 무의식속에서까지 나타나고 있음을 목도한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어느 개인이나 정당·조직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견과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런뜻에서 최근 많은 경로를 통해 봇물 터지듯 갖가지 의견이 백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야당에서 광주문제·5공화국 비리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나 민정당에서 이에 대처하는 방안들이 나오는 것도 필요하고 학생들의 통일논의에 대해 정부의 대안이 나오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최근 퇴역하는 육군참모총장이 울분섞인 군의 입장을 토로한 것도 그 조직의 논리상 있을수 있는 일이고 그 생각을 국민에게 알렸다는 데서 도움이 될수 있다.
다만 그러한 의견들이 다른 의견을 도외시한채 나만이 옳다는 독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할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시달린 고통이 권력을 요리한 계층이 강요한 그들만의 정의때문이었다면 내 자신의 정의강요가 상대방에게 주게될 고통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을 잊어버리거나 열외에 세우는 돼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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