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산수유나무의 농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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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1970~ )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이곳 지면을 채우는 일을 핑계로 꼬박 석 달 동안 시 쓰는 것을 접고 시를 읽었다. 행복했다. 어제는 모처럼 화원을 지나다가 수선화 핀 것을 앉아서 보았다. 오늘 아침에는 산수유나무에 눈길이 갔다. 빛이 바람을 밀어낸 자리에 꽃이 피었다. 당신에게 이 한 그루의 꽃나무를 보낸다. 스스로에게 나직이 속삭이듯, 마음속에 있는 이 나무를 하루에 몇 번이고 떠올려 보라. 당신의 그늘도 마냥 어둡지만은 않기를.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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