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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와인에서 '별을 마시는 술'로 거듭난 샴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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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더,오래] 조인호의 알면 약 모르면 술(3) 

20년 차 약사가 약과 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적는다. 와인은 10년 이상 된 취미로 한 포털 와인 부문 파워블로그를 4년 연속 수상했으며 2017 한국 소믈리에 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1위도 수상했다. 오랜 기간 약국에서 약을 취급하며 환자에게 복약 상담했던 경험, 와인과 기타 술에 대한 조예를 바탕으로 우리가 평소 접하는 약과 술의 이야기, 그리고 음식과 함께했을 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편집자 주> 

오늘날 거품이란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한다. ‘인기에 거품이 끼어 있다’ 또는 ‘집값에 거품이 심하다’라는 말이 다 그렇다.

그렇다면 거품이 있는 술, 샴페인은 어떤가. 누군가에는 여전히 거품의 차고 넘치는 성질이 갖는 ‘호화로움’의 이미지로 다가오겠지만, 역사와 유래를 알고 나면 다를 것이다.

샴페인은 포도의 발효과정을 거쳐 완성한 화이트 와인에 여러 공정을 더해 탄산가스를 입힌 술이다. [중앙포토]

샴페인은 포도의 발효과정을 거쳐 완성한 화이트 와인에 여러 공정을 더해 탄산가스를 입힌 술이다. [중앙포토]

알코올은 당분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었을 때 생겨난다. 이때 이산화탄소(CO₂)도 함께 발생한다. 하지만 와인을 포함한 일반적인 발효주의 경우 발효가 천천히 진행하는 동안, 그리고 다른 용기에 옮겨져 숙성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산화탄소는 증발·소실되고 만다.

반면 샴페인은 포도의 발효과정을 거쳐 완성한 화이트 와인에 여러 공정을 더해 이산화탄소, 즉 탄산가스를 입힌 것이다. 발효를 끝낸 와인의 병 안에 효모와 당분의 혼합물을 넣으면 두 번째 발효가 다시 일어나게 되고, 이때 생긴 이산화탄소는 병 안에 갇히게 되니 우리가 말하는 발포성 술이 되는 것이다.

말은 쉬워 보여도 과정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타짜 밑장 빼낸다’는 말이 있듯이 다 쓴 효모의 찌꺼기만 병에서 빼내는 기술과 탄산가스로 인한 내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유리병, 이를 단단히 봉인할 수 있는 특별한 마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샴페인의 핵심은 탄산가스 

결국 샴페인은 발효라는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함은 물론 이것을 통제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연마되었을 때 생겨난 상품이다.

와인은 천지인의 조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기후와 토양,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발효의 원리가 규명되기 전인 17세기만 해도 사람들은 가끔 자연스레 발생했던 와인 속 거품을 악마가 깃들었다고 여겼다. 이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졌고, 곧 와인의 결함이었다. 이를 극복하고 역설적으로 이 거품을 강조해 만들어낸 반전 결과물이 샴페인이기에 샴페인은 천지인 중 인간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병 안에서 두 번째 발효를 끝낸 효모 등의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병을 거꾸로 세워놓고 돌리는 작업이다. 르뮈아주(remuage)라고 한다.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생쌀을 재촉한다고 밥이 안 된다던 노인의 하소연은 샴페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진 Clay McLachlan, https://bonjourparis.com/archives/champagne-riddling-photojournalist-clay-mclachlan/]

병 안에서 두 번째 발효를 끝낸 효모 등의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병을 거꾸로 세워놓고 돌리는 작업이다. 르뮈아주(remuage)라고 한다.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생쌀을 재촉한다고 밥이 안 된다던 노인의 하소연은 샴페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진 Clay McLachlan, https://bonjourparis.com/archives/champagne-riddling-photojournalist-clay-mclachlan/]

병목에 모은 효모 찌꺼기를 순간 냉동해 제거하는 작업, 데고르주망(degorgement)이라고 한다. 장인의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하다. [사진 http://www.champagne-meteyer.com/vin-de-champagne-pages-Living-Heritage-uk-0-77-1.html]

병목에 모은 효모 찌꺼기를 순간 냉동해 제거하는 작업, 데고르주망(degorgement)이라고 한다. 장인의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하다. [사진 http://www.champagne-meteyer.com/vin-de-champagne-pages-Living-Heritage-uk-0-77-1.html]

탄산가스의 존재가 핵심인 샴페인처럼 탄산가스가 큰 역할을 하는 약품도 있다. 물에 녹여서 복용하는 발포정의 형태로 먹는 약들이다. 발포정은 기능성 성분(또는 약물)에 탄산수소나트륨과 유기산을 섞어 만든 가용성 정제로 물에 넣으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먼저 딱딱한 알약을 삼키기 힘든 사람에게 복용이 쉬울 수 있고 구강 점막에 기분 좋은 청량감을 준다. 또한 발포정은 완전히 녹아서 흡수되므로 위장에서의 붕해가 균일한 것도 장점이다. 주로 비타민이나 유산균 등 가벼운 기능성 식품 등에 적용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의약품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우리가 드링크 소화제로 접하는 약에도 탄산가스는 낯설지 않다. 국민 소화제로 자리 잡은 까스활명수나 까스명수 등은 감초·계피·회향·정향 등으로 만든 물약에 이산화탄소를 액화한 드링크다. 물약 안의 탄산이 기화되면서 발생한 기포가 위벽에 자극을 주면 시원한 느낌과 함께 더부룩한 체증이 해소되는 기분을 준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료 콜라가 원래는 약국에서 조제되었던 두통, 소화불량에 쓰였던 물약이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효과를 뒷받침해준다.

빠른 흡수를 목적으로 하는 비타민 발포정(왼쪽)과 위장장애 개선을 위해 발포정으로 출시한 골다공증 치료제 비노스토 발포정. [사진 http://www.berocca.co.kr/, 약사공론]

빠른 흡수를 목적으로 하는 비타민 발포정(왼쪽)과 위장장애 개선을 위해 발포정으로 출시한 골다공증 치료제 비노스토 발포정. [사진 http://www.berocca.co.kr/, 약사공론]

탄산가스를 약물에 액화해 소화작용을 돕게 만든 소화제 드링크. [사진 동화약품 홈페이지, 삼성제약 홈페이지]

탄산가스를 약물에 액화해 소화작용을 돕게 만든 소화제 드링크. [사진 동화약품 홈페이지, 삼성제약 홈페이지]

마시는 것보다 보는 축배의 술 

특별한 날의 축하나 파티를 위한, 마시는 것보다는 보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한 샴페인 역시 탄산가스가 주는 생리적인 효능이 있다.

1. 샴페인의 기포가 위벽을 자극해 식욕을 돋워준다. 서양에서 식사 전에 한잔씩 마시며 본격적인 식사의 시동(?)을 거는 '아페리티프'(식전주)로 많이 쓰이는 것이 샴페인 즉 스파클링 와인이다.

2. 칼로리가 낮고(보통 샴페인 100g당 80kcal, 레드 와인은 120kcal) 부담이 없다. 또한 위장 내에서 탄산가스의 확산으로 배가 금세 차는 느낌이 들어 천천히 마실 수 있다.

3. pH가 낮아 (보통 2.0을 조금 넘는 수준이며 이에 반해 레드 와인은 3.5 정도) 산도가 높은 술이다. 이는 이산화탄소(CO₂)가 샴페인 용액 안에서 탄산(H₂CO₃)으로 용해돼 있어서 그렇다. 산성이 높다는 것은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덜어주는데 궁합이 좋은 술이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레드 와인을 마실 때처럼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까지 갖추고 있다. 또 2013년 영국의 레딩 대학(University of Reading)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잔에서 석 잔씩 샴페인을 마셨을 때 치매와 알츠하이머의 발병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샴페인은 지금처럼 요란한 축포 소리를 얻기 위해, 또 흥을 내기 위해 소비하는 술이 아니라 중년 이후의 애주가에게 보다 실질적인 이유에서 관심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물론 이토록 예찬해 마지않을 샴페인 즐기기에도 난관은 있다. 일반 와인에 비해 공정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이유로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다. 이럴 때의 대안으로는 샴페인(샴페인은 프랑스의 지명이자 이곳에서 나는 와인을 지칭하는 브랜드 명칭) 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스파클링 와인을 찾으면 된다.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나는 끄레망(Cremant), 독일의 젝트(Sekt), 스페인의 까바(Cava), 이탈리아의 프로세코(Prosecco)등이 샴페인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샴페인은 탄산가스가 갖는 휘발성 때문에 한번 마개를 열면 다시 저장이 힘들다는 약점이 있다. 주량이 약한 이가 혼술 할 때 샴페인이 남을 것을 우려해 남는 샴페인 활용법을 알려주는 이들도 있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의료 센터 피부과 박사 마리나 페레도(Marina Peredo)는 샴페인은 살균 효과가 있어 세안 후 화장 솜에 샴페인을 약간 묻혀 사용하면 각질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뉴욕의 유명 뷰티 전문가 조엘 워런 (Joel Warren)은 "부드러운 머릿결을 얻고 싶다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샴페인 한 컵 반과 따뜻한 물 한 컵 반을 섞어 머리를 헹구라"며 마시다 남은 샴페인 활용법을 제시하고 있다.

샴페인의 아버지 동 페리뇽 "별을 마신다"

샴페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 페리뇽은 "별을 마신다"로 샴페인의 맛을 표현했다. 하지만 샴페인에 대한 지식과 이를 대입할 상상력이 있다면 이러한 수사도 모자라다. 앞서 얘기했듯 세상에서 인간의 고난 극복과 창조성으로 얻어낸 결실의 본보기로 가장 적합한 술이기 때문이다.

샴페인에서의 기포와 거품은 단순히 가스를 주입하는 소화제 드링크나 탄산 음료와 달리 발효라는 자연현상을 깨우치고 통제해서 얻어낸 산물이다. [중앙포토]

샴페인에서의 기포와 거품은 단순히 가스를 주입하는 소화제 드링크나 탄산 음료와 달리 발효라는 자연현상을 깨우치고 통제해서 얻어낸 산물이다. [중앙포토]

자 그렇다면 이제 잔을 들어 샴페인을, 반짝이는 기포와 거품을 바라보자. 땀과 눈물로 빚어낸 별이 보이지 않는가?

조인호 약사·와인 파워블로거 inho3412@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s://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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