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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와인으로 살 빼고 싶으면 딱 한 잔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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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인호의 알면 약 모르면 술(2)

20년 차 약사가 약과 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적는다. 와인은 10년 이상 된 취미로 한 포털 와인 부문 파워블로그를 4년 연속 수상했으며 2017 한국 소믈리에 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1위도 수상했다. 오랜 기간 약국에서 약을 취급하며 환자에게 복약 상담했던 경험, 와인과 기타 술에 대한 조예를 바탕으로 우리가 평소 접하는 약과 술의 이야기, 그리고 음식과 함께했을 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편집자>

날씬함을 곧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시대인지라 우리는 어디를 가든 수많은 다이어트 제품과 정보를 접하게 된다. 현재 의사의 처방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제품 중에선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라는 식물의 추출물로 만든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살찌지 않게 한다는 빨간 봉지의 약 

몇 년 전 소위 얼리어답터들이 일본에 가면 꼭 사 오던 상품 중 ‘나캇타코타니’라 적힌 빨간 봉지의 약이 있었다. 어려운 일본 발음 대신 ‘칼로리 커팅제’로 불렸다. 식사 전 이를 몇 알 먹으면 아무리 많은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너도나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이 제품 역시 가르시니아 캄보지아가 주성분이다.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열매. 예전에는 동남아 지역 요리의 양념 일부로 쓰이는 경우가 고작이었으나 오늘날엔 다이어트 보조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열매. 예전에는 동남아 지역 요리의 양념 일부로 쓰이는 경우가 고작이었으나 오늘날엔 다이어트 보조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는 동남아시아 등에서 자라는 열대 과일이다. 약리 작용을 내는 주성분은 껍질에서 추출한 물질로, 명칭은 ‘하이드록시 구연산(hydroxycitric acid, 줄여서 HCA)’이다. 이것의 약리 작용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 몸이 에너지를 얻고 쓰는 방식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 몸은 연료를 넣고 이를 연소해야만 기능하는 자동차와 같다. 석유 대신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이들을 필수 영양소로써 섭취해야만 한다. 세 가지 영양소 중 가장 높은 에너지(열량)를 내는 것은 지방이지만 효율이 높은 것은 단연 탄수화물이다. 에너지로의 전환이 빠르기 때문이다. 대신 축적도 그만큼 신속하고 쉽다.

에너지로 소모되지 못한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지방으로 축적이 된다. [사진 조인호]

에너지로 소모되지 못한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지방으로 축적이 된다. [사진 조인호]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의 분해과정을 거쳐 당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남는 잉여의 포도당은 미래의 사용을 위해 간과 근육에 '글리코겐'이란 형태로 저장되며 잉여의 포도당은 더욱 먼 미래를 위한 전혀 다른 형태의 저장물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저축(?)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중성지방이다.

빠른 공수 전환을 주요 전술로 삼는 축구팀이 있다. 성공 확률은 높겠지만 역습에 실패할 경우엔 곧바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섭취한 후 재빨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탄수화물이 갖는 리스크는 이를 다 소비하지 못할 경우에 발생한다. 오늘날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지방으로 축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HCA는 3번 과정 즉 소비가 덜 된 잉여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변하는 과정을 억제한다.

그렇다면 지방으로 바뀌지 못한 포도당은 어떻게 될까? 2번의 대사 과정으로 경로를 바꿀 수 밖에 없다. 즉, 간에서 글리코겐으로의 합성을 시도하게 되며 이는 뇌에서 우리 몸에 에너지 레벨이 충분하니 그만 먹어도 된다는 신호로 읽히게 된다. 식욕 억제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방 합성을 막고 식욕을 감소시키는 것이 HCA의 주요 효능이다.

탄수화물은 가장 작은 땔감 재료와 같다. 즉시 태워져 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장된 지방은 그 반대다. [출처 ‘연료를 태울 것인지 말 것인지 (To Burn or Not to Burn)’, 저자 Dr. Len Lopez]

탄수화물은 가장 작은 땔감 재료와 같다. 즉시 태워져 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장된 지방은 그 반대다. [출처 ‘연료를 태울 것인지 말 것인지 (To Burn or Not to Burn)’, 저자 Dr. Len Lopez]

물론 이 모든 것이 이론적으로는 무리가 없지만, 실제 임상 시험의 결과는 기대만큼 크지가 않다. 단순 건강기능 식품으로서 체중 관련 보조제로 이를 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소화불량과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있으며 간·신장·심장 질환자는 주의해 복용해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자.

알고 마셨을 때 ‘약’ 이 되는 와인 역시 다이어트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2012년 오리건 주립 대학교의 닐 쉐이(Neil Shey) 박사 연구팀은 비만 쥐에게 포도 추출물을 10주간 먹였더니 이들의 지방간과 혈당 수치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때 사용한 포도 품종이 미국 남동부에서 자라는 무스카딘(muscadine)이다.

2013년에는 레드 와인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와인에 널리 쓰이는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을 가지고 보충 실험을 했는데 이들의 지방 세포가 성장,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고 간세포에서 지방산이 분해되는 것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발표에 따르면 포도의 껍질과 씨에 함유된 4가지 화합물의 작용 때문이며 이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엘라직 산(ellagic acid)이었다. 이는 석류나 검은빛의 포도 껍질에 많이 존재하는 항산화 물질이다. 와인이 우리 몸의 지방 연소율을 높여주는 다이어트 식품이 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연구 결과다.

지방 연소에 도움되는 카베르네 쇼비뇽 

그렇다면 어떤 와인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 지방 연소에 도움이 된다고 밝혀진 엘라직 산은 색이 짙은 포도 껍질에 많으므로 레드 와인 중에서도 껍질이 두껍고 색이 진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따나(Tannat) 등의 품종을 추천하고 싶다.

카베르네 소비뇽. [중앙포토]

카베르네 소비뇽. [중앙포토]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이 있다. 와인을 만들 때 오크통(나무통)에 숙성을 오래 할수록 엘라직 산이 증가한다고 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오크통에 오랜 기간 숙성한 와인이 좋겠다.

어떤 와인인지 모르겠다고? 일반적인 레드 와인 맛인 검은 과일, 체리, 삼나무 맛 이외에 바닐라나 연유 등 크리미한 맛과 구운 내음이 느껴진다면 그 와인은 오크통의 숙성을 거쳤다 볼 수 있다.

스페인 북부의 리오하는 예로부터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하는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기간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데 ‘그랑 리제르바(Gran Reserva)’의 경우 오크통에서 최소 2년 이상의 숙성을 거쳐야 하므로 우리가 원하는 다이어트 효과를 내기에 최적의 와인이다.

Torres Gran Coronas Cabernet Sauvignon Gran Reserva 1989. [사진 조인호 개인 블로그, 그랬지의 잠꼬대]

Torres Gran Coronas Cabernet Sauvignon Gran Reserva 1989. [사진 조인호 개인 블로그, 그랬지의 잠꼬대]

또한 비교적 덜 알려진 산지인 프랑스 남서부의 마디랑에서 나는 샤또 몽투스 역시 위 조건에 부합한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거친 맛을 내는 따나 품종을 오크통에서 부드럽게 조련시켜서 내는 고급 와인이다. 특히 뀌베 XL의 경우 무려 40개월이나 오크통 숙성을 거친 후 병에 담아 출시한다.

Chateau Montus Cuvee Prestige 1994. [사진 조인호 개인 블로그, 그랬지의 잠꼬대]

Chateau Montus Cuvee Prestige 1994. [사진 조인호 개인 블로그, 그랬지의 잠꼬대]

이 글의 화두인 ‘나캇타코토니’는 ‘없었던 일로’란 뜻의 일본어다. 이미 먹은 행위를 없던 일로 바꾸어준다는 의미다. 과식의 죄책감을 항상 염려하며 식사를 하는 현대인의 마음에 딱 와 닿는 명칭이다.

칼로리 커팅제로 불리웠던 나캇타코토니. [사진 제조사 홈페이지(http://www.graphico.jp/nktdiet/lineup.html)]

칼로리 커팅제로 불리웠던 나캇타코토니. [사진 제조사 홈페이지(http://www.graphico.jp/nktdiet/lineup.html)]

레드 와인을 마시며 없었던 일로 정확히는 '없었던 열량'으로의 효과를 기대하려면 딱 한 잔만 마실 수 있는 절제 역시 필수다. 과잉 알코올이 초래하는 여러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닐 박사의 생쥐 실험에서 쓰인 포도와 엘라직 산의 함량을 인체와 와인에 환산해 적용했을 때의 양이 와인 한 잔인 이유에서다. 그렇지 않다면 혹 우리에게 더 소중한 다른 것도 함께 없어질지 모를 일일 테니 말이다.

조인호 약사·와인 파워블로거 inho3412@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s://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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