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그이는 외계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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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과 너무나 많이 달라진 아내를 보면 가끔 나는 아내가 외계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내를 잡아먹은 외계인이 아내 행세를 하면서 나와 살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한 어느 날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들었다. 술에 취해 꿈결처럼 들렸지만 아무튼 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기억한다.

"선생님, 전 외계인과 사는 것 같아요. 남편은 통 말이 없어요. 저만 보면 슬슬 피하고. 바깥에 나가자고 해도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집에서만 빈둥거리고. … 네, 남편은 운동을 싫어해요. 결혼할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요즘 보면 그렇게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없어요. 선생님, ET 아시죠? 글쎄 제 남편 모습이 꼭 그렇다니까요. 팔과 손가락은 길고 배는 불룩 튀어나온…."

"저흰 부부관계라고 할 것도 없어요. 처음엔 도중에 멈추기에 이상했는데…. 선생님, 도중에 그렇게 갑자기 작아지는 일도 있는 건가요? 저는 제게 뭔가 문제가 있어 그런가 해서, 몸매도 더 열심히 가꾸고, 저 나름대로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도 남편의 증상은 갈수록 더 나빠지는 거예요."

"돌아누운 남편은 마치 자신의 별과 종족을 그리워하는 ET 같았어요. 남자가 속은 좁아터져서 잘 삐치고. 밤에도 남편은 잠이 없어요. 자다가 허전해 깨보면 불도 안 켜고 깜깜한 방에서 인터넷으로 외계인들과 교신하고 있지 뭐예요. 그럴 때 남편 몸은 온통 파랗게 변해 있어요. 네? 물론 컴퓨터에서 나온 빛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 아니에요. 그게 다 자신의 본색을 감추기 위한 거죠."

"제 자랑 같지만 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선생님, 전 남편에게 잘해 주고 싶어요. 전 정말 남편을 사랑해요. 그런데도 남편은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외계인이니까. … 안 돼요. 만일 자기 정체를 제가 알고 있다는 걸 남편이 안다면… 그 사람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요."

"선생님, 외계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남편은 친구를 만났다거나 회사 동료와 한잔하느라 늦었다고 하지만. 그걸 그대로 믿을 바보 같은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 사람들도 가족이 있을 텐데 누가 그 시간까지 남아 제 남편과 술을 마셔 주겠어요. 다 거짓말이죠. 자기 종족을 만나는 거라니까요. 그런 사실을 위장하기 위해 남편은 매번 고주망태가 되어 오지만. 우습죠. 그런 뻔한 속임수에 누가 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렇게 술을 마시고서야 인간이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벌써 죽었겠죠."

"남편을 보고 있으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불쌍해 가슴이 미어져요. 제가 보기보다 마음이 여려요. 그런데 선생님, 제 남편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전 그게 늘 궁금해요."

아내 말처럼 나도 외계인인지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았으며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 앞으로도 서로 오해하고 다투고 상처를 주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별에서 만나 결혼한 나와 아내의 임무인지 모른다.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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