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만교씨 창작집·장편소설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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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 착한 남자/이만교 지음, 민음사, 8천5백원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이만교 지음, 민음사, 8천원

첫 만남에서 여관으로 직행하는 남녀를 통해 시효 지난, 제도로서의 결혼을 꼬집었던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소설가 이만교(36)씨가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동시에 냈다.

소설집은 '나쁜 여자, 착한 남자''농담을, 이해하다' 등 중.단편 6편을 담은 '나쁜 여자, 착한 남자'고 장편은 작가가 최근 8개월간 축령산 자락에 틀어박혀 썼다는, 어린시절 놀이사회를 다룬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이다.

큰누나가 가져다 준 요술처럼 탄력이 뛰어난 공을 둘러싸고 소년 동이와 또래 친구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동들을 동화처럼 풀어 낸 '아이들은…' 보다 아무래도 '나쁜 여자…'가 '성인용'이다.

표제작인 중편 '나쁜 여자…'는 '학교를 갓 졸업해 천진한 데다 깨끗한 이목구비에 고양이 웃음, 키스를 많이 해본 솜씨임에도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다리를 벌려도 처음인 척 부끄러워하면서도 제때 엉덩이를 까닥일 줄 아는' 부하 여직원과 은밀한 관계를 즐기는 탐욕스럽고 계산 빠른 부장이 역시 부하직원으로 갓 입사한 촌티나는 아줌마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뼈대로 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소설은 예상되는 진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젊은 여직원과의 훨씬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스킨십에서도 덤덤하던 부장은 '아줌마'와는 짧고 간단한 입맞춤으로도 회오리가 몸에 감겨오고 삼사볼트의 낮은 전류나 발가락 긴 곤충들이 전신을 기어다니는 흥분을 느끼게 되고, 결국 갈 데까지 가고 만다.

작가는 결말을 파국으로 마무리짓는다. 부장은 젊은 여직원과 짜고 아줌마를 꾀어 '1대 2 정사'까지 벌인 후 아줌마에게 시들한 반응을 보이고 상심한 아줌마는 자살을 선택한다.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남녀관계의 온갖 변칙적인 조합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 세계의 성적 지형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각종 징후들이 보고되는 마당에 '나쁜 여자…'의 세계는 기껏 뒷북치는 트렌디 드라마나 '이제는 익숙해진 불륜 현실'의 소설적 재현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진지한 문학과 통속적 문학의 경계에 서 있다. 소설이 '통속'에서 구제돼 세태를 꼬집는 소설로 격상되는 까닭은 소설 뒷부분의 문제 제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의 화자인 부장의 입을 통해 아줌마가 사실은 무능한 남편과의 결혼을 청산하고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부장과 재결합하기 위해 주변의 상담을 받아가며 육체관계의 허용 시기를 조절했던 것은 아닌지, 역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내의 교통사고를 보험금을 염두에 둔 부장이 내심 바랐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주인공의 능력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주변 인물들의 감춰진 진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국면들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나쁜 여자, 착한 남자의 기준은 애매모호해진다.

'농담을, 이해하다'는 여자는 마누라밖에 모르고 농담과 진담 구분에 항상 어려움을 겪던 고지식한 바른생활 샐러리맨이 부하 직원과의 어울림을 통해 '너도 나도 애인을 만드는 일반적인 현실'을 인정하게 된 후 부서 팀장 뺨치는 농담을 지껄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애인을 만들었다는 공범의식을 은밀하게 공유하게 된 선배와 부하 직원은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코드로 은밀한 농담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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