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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잔재 '개죽음' 막는 이중배상 금지조항 사라질까

중앙일보

입력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이 사라질 수 있을까.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군인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 규정, 이른바 ‘군인의 이중배상금지’ 조항을 삭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1972년 유신헌법에 명시된 이 조항이 46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관심이다.

 현행 헌법 29조②에는 ‘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등이 전투ㆍ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위헌 요소가 있는 독소 조항이란 지적에도 40년 넘게 유지돼 왔다. 지난해 9월 리셋코리아(중앙일보ㆍ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개헌특별분과는 이 조항의 삭제를 제안했다. (중앙일보 9월 22일자 4면)

‘이중배상 금지’ 조항을 보도한 중앙일보 2017년 9월 22일자 4면.

‘이중배상 금지’ 조항을 보도한 중앙일보 2017년 9월 22일자 4면.

 이중배상 금지 조항의 유래를 찾으려면 1965년 베트남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젊은이가 많았다. 이들은 전사 여부나 부상 정도에 따라 보상금은 물론 소송을 통한 별도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67년 국가배상법이 개정되면서 군인은 보상만 받고 배상 청구는 못하게 됐다. 이 때부터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논란이 커지자 71년 대법원이 ‘개죽음 조항’의 위헌 여부를 들여다봤다. 헌법재판소가 있기 전의 일이다. 당시 위헌 결정이라는 파격적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72년 유신헌법에 아예 이중배상 금지를 명시해버렸다. 군인은 물론 경찰도 추가됐다. 87년 개헌 때도 대통령 직선제 이슈에 묻혀 이 독소조항을 고치지 못했다.

2015년 12월 임진각에서 열린 '평화의 발' 조형물 제막식.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가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하 중사의 어머니 김문자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12월 임진각에서 열린 '평화의 발' 조형물 제막식.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가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하 중사의 어머니 김문자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중앙포토]

이중배상 금지 조항의 폐해는 명확하다. 2016년 8월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병사 두 명이 다리를 잃었다. 이들은 군 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서 자비로 치료를 받았다. 이 역시 이중배상 금지의 악영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기우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보호받기는 커녕 군·경찰이란 신분 때문에 오히려 불이익을 받아온 것"이라며 "학계에서도 꾸준히 비판해 온 문제인데 이제라도 정상화되는 과정이라 본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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