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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중 합창단원의 자격있는 사람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일 시민합창단에 지원한 참가자(왼쪽)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12일 시민합창단에 지원한 참가자(왼쪽)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참가자 1.
머리를 단정히 빗은 젊은 남성이 오디션 방에 들어왔다. 곧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고 남성이 입을 떼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침착한 목소리다. 그가 나간 후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오디션 보려고 신혼여행도 미뤘대요.”
참가자 2.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젊은 여성의 소리가 곱다. 심사위원이 물었다. “높은음 어디까지 올라가요?” 피아노로 높은 ‘도’를 짚어줬다. 여성은 ‘솔’까지 불렀다. 성악가인 심사위원들도 놀랐다. 하지만 오디션 한시간 전 악보를 나눠주고 부르게 한 과제곡에서는 실력발휘를 못 했다. 소프라노 대신 알토를 부르다 다시 소프라노로 돌아오곤 했다.
참가자 3.
“카세트 테이프만 듣고 연습을 해서 건반 반주에는 노래를 못하겠어요.” 중년 여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지만 곧 제 자리를 찾았다. 연습한 티가 난다.
참가자 4.
‘선구자’를 선곡해 온 노년의 남성. 소리는 아주 거칠다. “목소리가 갈라져가, 죄송합니데이.” 꾸벅 인사를 하고 과제곡을 부르곤 “미안합니다”라며 다시 한번 사과하고 오디션장을 떠났다.
참가자 5.
“죄송합니다. 너무 떨려서… 잠깐만요.” 소리가 예쁜데 고음에서 문제가 있다. 음이 올라가면 손으로 입을 가리는 버릇도 있다. “죄송합니다. 집에서는 잘 됐는데 이게 안 나오네요.” 그러자 한 심사위원이 제안했다. “그럼 파트를 소프라노 대신 알토로 바꿔보실래요?” 잠시 고민하는 참가자. “그건 안 해봐서. 죄송합니다.” 총총히 방을 떠났다.
참가자 6.
많이 긴장한 젊은 여성이 가곡 ‘별’을 부른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켁켁켁.” 소리가 갈라진다. “죄송해요. 너무 긴장해서. 다시 할게요.” 눈을 감고 노래를 이어간다.

서울시합창단이 뽑는 시민합창단 오디션 현장 가보니...

서울시합창단의 시민합창단 연습 장면. 매년 2대 1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시민 단원들이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합창단의 시민합창단 연습 장면. 매년 2대 1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시민 단원들이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누가 합격했을까? 이들은 서울시합창단이 5월 공연을 위해 뽑은 시민합창단 지원자들이다. 12일 세종문화회관 연습동에서 열린 오디션엔 82명이 지원해 46명이 합격했다. 서울시합창단의 단장 강기성, 소프라노 수석 최선율, 알토 수석 이재숙, 베이스 수석 김홍민이 심사를 맡아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지원자들은 스스로 선곡한 자유곡 한 곡, 당일에 악보를 받고 초견(初見)으로 불러야 하는 과제곡 한 곡을 불렀다.

지원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가 컸지만 음정을 못 잡았고 또 다른 사람은 높은 음까지 부를 수 있었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음정, 음량, 리듬 감각, 원래 목소리, 자신감, 악보 보는 능력, 피아노 반주를 듣는 감각 등 여러 요소가 노래를 만든다. 심사위원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봤을까.

강기성 단장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본다. 박자와 음정”이라고 했다. 최선율 수석도 “음정과 박자가 정확한 사람을 뽑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연습 기간이 두 달 뿐이라서 기본이 잘돼 있는 사람이 합창할 수 있다”는 이유다. 따라서 소리가 거칠거나 높은음이 나지 않아도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따라간 참가자들은 합격했다.

반대로 높은 음을 잘 냈던 응시자는 합격하지 못했다. 김홍민 수석은 “음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고음은 제대로 내지 못해도 옆사람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음정은 한 두사람이 틀리게 쌓다보면 전체가 무너진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기본기가 좋은 사람들을 골라냈다.

이들은 프로 단원, 오케스트라와 함께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는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이들은 프로 단원, 오케스트라와 함께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는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소리가 크고 시원한 사람이 합창에는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최선율 수석은 “비브라토가 심하거나 소리가 뾰족하면 합창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걸러냈다”고 했다. 김홍민 수석은 “프로들에게도 합창은 쉽지 않다. 자기 소리를 고집하면 안되고 지휘자 의도에 따라 발성을 자유롭게 바꿀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의 음역대를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응시자들 중에는 소프라노인데 알토로 지원하거나 반대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음역대를 바꿀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참가자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최수석은 “여성은 소프라노, 남성은 베이스에 많이 지원하는 게 매년 변하지 않는 경향”이라며 “두 마디 정도만 들으면 그 사람의 진짜 음역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긴장감은 의외로 당락에 미친 영향이 적었다. 똑같이 긴장했지만 당락이 갈렸다. 강기성 단장은 “성악가들도 다 떤다. 하지만 긴장하는 와중에도 음정을 정확히 낸다. 떨려서 못하는 것과 원래 못하는 것은 한눈에 구별된다”고 했다.

서울시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의 지난해 공연 장면. [사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의 지난해 공연 장면. [사진 세종문화회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합창의 매력에 빠져 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이들이 적잖다. 1978년 창단한 서울시합창단은 2012년부터 시민합창단을 모집해 프로 단원들과 함께 서는 무대를 마련해준다. 매년 경쟁률이 2대 1을 넘는다. 일반합창총연합회의 임진순 회장은 “현재 시마다 아마추어 합창단이 20~30개씩 있다고 보면 된다”며 “몇 년 지속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위의 참가자 중 합격자는 1ㆍ3ㆍ4ㆍ6번이었다. 음정이 틀리지 않았고 기본에 충실했던 이들이다. 합격자 중 한 명인 조희화(56,여)씨는 “이사를 세 번 했는데 그때마다 지역의 합창단을 찾아다녔다”는 자칭 ‘합창 중독자’다. “여럿이 같은 소리를 냈을 때 뿌듯함은 말도 못한다”고 했다. 시민 합창단 48명은 정식 단원 40여명과 함께 5월 29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 지휘자 김명엽,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과 함께 이호준의 ‘어라운드 더 월드’ 중 ‘고향의 노래’ ‘자연의 노래’를 부른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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