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시설이 연구 센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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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신사옥 인허가 과정에서 서울시와 건설교통부를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쌍둥이빌딩. 왼쪽이 증축 공사 중인 자동차 연구개발센터 건물이다. 안성식 기자

현대자동차의 서울 양재동 연구개발센터와 관련된 도시계획시설 관련 규칙 개정이 2000년에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서울시는 2004년 5월 건설교통부에 규칙 개정 의견을 밝혀 현대자동차가 연구개발센터를 증축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건교부는 이를 받아들여 2004년 12월 규칙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연구개발센터 증축이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치밀한 사전 정지 작업에 의한 게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28일 "양재동 연구센터 증축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건교부가 서울시 건의를 받아 규칙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현대 측의 로비가 있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 연구개발센터 인허가 의혹=서울시에 따르면 2000년 8월 개정된 도시계획시설 관련 규칙은 유통업무설비 안에 '자동차 매매업 또는 도매업에 제공되는 사무소 또는 점포'를 포함시켰다. 2000년 8월은 현대자동차가 현재 본사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는 농협 건물을 사들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때다. 그러나 이전 규칙대로라면 자동차 매매업은 유통업무설비로 분류되지 않아 현대자동차가 건물을 사들이더라도 사옥이나 연구개발센터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규칙 개정이 현대자동차를 위해 마치 각본이라도 짜 놓은 것처럼, 그것도 현대자동차가 미처 건물을 사들이기도 전에 이뤄진 것이다.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공교롭다. 또 다른 의문점은 문제의 항목이 2002년 12월 개정 때는 빠졌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는 2000년 10월 농협 건물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2000년 1월부터 경쟁입찰에 부쳐졌던 농협 건물은 여섯 차례 유찰된 끝에 8월께 수의계약으로 매각 방식이 변경됐고, 현대는 건물을 사들일 수 있었다. 결국 자동차 도매업을 유통업무설비에 포함한 건교부 규칙은 2000년 8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만 존재했고, 현대자동차는 이 시기에 자동차와는 상관도 없던 농협 건물을 사들여 사옥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 도시계획 심의도 피해=현대자동차의 연구개발센터 증축은 서울시의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도 피해 갔다. 지난해 12월 규칙이 또다시 개정되면서 연구시설이 유통업무설비의 부대시설로 분류돼 도시계획위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면적이 바로 옆의 현대차 본사보다 넓은 21층짜리 건물을 건축하면서 도시계획위 심의를 받지 않은 것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건교부는 연구개발센터 증축을 가능하게 한 2004년 12월 규칙 개정에 대해 "유통업무시설에 연구시설이 필요하다는 기업의 요구가 많았고 때마침 대통령과 기업인이 만난 자리에서도 관련 요청이 있었다"며 "특히 현대자동차가 아닌 LG 측이 연구시설의 허용을 요구했었다"고 밝혔다.

나현철.신준봉 기자 <tigerac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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