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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북한산 의상 능선 오르며 느낀 '소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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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18)

푸른 하늘 아래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북한산 의상 능선(왼쪽)과 백운대(중앙). [사진 하만윤]

푸른 하늘 아래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북한산 의상 능선(왼쪽)과 백운대(중앙). [사진 하만윤]

북한산만 벌써 세 번째다. 비봉능선이 처음이었고 14성문 종주 기행을 지난가을에 썼다. 아직 영봉을 돌아 백운대로 오르는 길, 숨은 벽 능선 등 함께 혹은 혼자라도 오르고 소개하고 싶은 길이 많다. 북한산은 그만큼 등산로가 다양하다. 그 길에서 만나고 볼 수 있는 거리는 또 얼마나 많고 다채로운가.

북한산성 완주 기념품. 필자는 4개월 만에 받았다. [사진 하만윤]

북한산성 완주 기념품. 필자는 4개월 만에 받았다. [사진 하만윤]

이번엔 의상 능선이다. 북한산성 대서문 방면에 있는 의상봉(502m)에서 용출봉(571m), 용혈봉(581m), 증취봉(593m), 나월봉(651m), 나한봉(688m), 715봉, 문수봉(727m)으로 이어지는 바윗길이다. 신라 시대 고승인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설악산에 공룡 능선이 있다면 북한산에는 의상 능선이 있다고 할 정도로, 규모는 작아도 바위가 풍기는 장엄미가 설악산의 그것에 비견한다. 특히 그 바윗길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은 북한산 등산로 중에서 손에 꼽힌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의상봉. [사진 하만윤]

북한산성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의상봉. [사진 하만윤]

삼일절에 눈길 산행은 뜻밖의 행운  

삼일절에 의상 능선을 가기로 했다. 우수가 지난 지 꽤 됐으니 겨우내 얼었던 길이 녹아 조금은 쉽게 의상 능선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구파발역에서 일행을 만나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까지 이동했다.

그런데 어째 건물 사이로 보이는 북한산 능선 길이 여전히 하얬다. 전날 도심에 내린 비가 북한산에서는 능선 곳곳을 하얀 눈으로 채운 모양이다.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고 오는 봄을 시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3월에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의 눈길 산행은 도리어 뜻밖의 행운이고 즐거움이었다.

전날 도심에 비가 내리는 동안 북한산 정상은 눈으로 뒤덮였다. [사진 하만윤]

전날 도심에 비가 내리는 동안 북한산 정상은 눈으로 뒤덮였다. [사진 하만윤]

북한산성 입구에서 10여 분을 걸어가면 의상 능선 시작 길인 의상봉 들머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40여 분을 오르면 첫 번째 봉우리인 의상봉을 만날 수 있다. 의상봉 근처에 다다를수록 깊이 쌓인 눈길이 일행을 긴장하게 하였다. 눈길이 아닌 곳은 얼음이 얼었다. 일행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차가운 로프를 잡기 위해 장갑도 끼는 등 겨울산행 못지않게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조심히 산에 오른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의상봉의 명물인 토끼 바위를 만났다. 토끼 두 마리가 무슨 재미난 얘기라도 나누는지, 오랜 세월 서로 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정 좋은 토끼 바위까지 오르면 고양시와 북한산 응봉 능선, 비봉 능선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서로 떨어질 줄 모르는 토끼 바위. 의상봉의 명물이다. [사진 하만윤]

오랜 세월 서로 떨어질 줄 모르는 토끼 바위. 의상봉의 명물이다. [사진 하만윤]

날이 좋은 평소에도 쉽사리 오를 수 있는 길이 아니지만 눈 쌓이고 얼음까지 얼어 길이 더디다. 게다가 새벽까지 내린 눈이 연출한 근사하고 멋진 풍경을 마음에 담고 사진으로 남기다 보니 시간이 꽤 지체된다. 하지만 서둘러 가자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산행이라는 것이 시간에 맞춰 정한 코스를 모두 돌아 내려와야 하는 기록경기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의상봉, 용출봉까지 오르고 난 다음 이른 점심을 먹는다. 바람이 조금은 덜하고 일행이 다 같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바람을 막아줄 비닐 쉘터를 쳤다.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 소리를 들으며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다.

의상봉 근처에서 바라본 용혈봉. 가파른 바위봉우리가 불끈해 있다. [사진 하만윤]

의상봉 근처에서 바라본 용혈봉. 가파른 바위봉우리가 불끈해 있다. [사진 하만윤]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기 전에 가만히 길을 바라본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좋고 가야 할 길을 바라보니 더 좋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사각사각 제 존재를 알리는 새하얀 눈과 봉우리 위로 푸르게 펼친 하늘도 배경으로 더할 나위 없다. 몸도 가뿐하고 마음마저 가벼우니 걷는 길이 유쾌하다.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이 있을까. 이런 산행이야말로 이른바 ‘소확행’일 것이다.

지나온 의상 능선의 수려함이 또 한 번 발길을 잡는다. [사진 하만윤]

지나온 의상 능선의 수려함이 또 한 번 발길을 잡는다. [사진 하만윤]

의상봉을 내려서는 기점부터 대남문까지는 북한산성 종주 길이다. 의상 능선 바윗길을 북한산성의 일부로 삼은 우리 선조의 지혜에 감복하게 된다. 지난해 10월께 14성문을 종주할 때 내려왔던 길과 반대로 올라가지만, 그때의 감흥이 문득문득 되살아나 걷는 내내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선조들의 지혜로 북한산성의 일부가 된 의상 능선 구간. [사진 하만윤]

선조들의 지혜로 북한산성의 일부가 된 의상 능선 구간. [사진 하만윤]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까지 가는 길에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을 지나 대남문까지 한숨에 오른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이다.

아름다운 계곡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산영루. [사진 하만윤]

아름다운 계곡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산영루. [사진 하만윤]

대남문부터는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길이 험하지 않고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백운동 계곡, 노적동 계곡을 지나 이어지는 북한천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름이면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귀가 시원해지는 여정이다. 중성문을 지나 대서문으로 향하지 않고 계곡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그러기를 20여 분. 어느새 아침에 출발을 위해 모였던 탐방 지원센터에 다다랐다.

하산 길에 올려다본 백운대. 정상의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진 하만윤]

하산 길에 올려다본 백운대. 정상의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진 하만윤]

북한산성탐방 지원센터-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대남문-중성문-북한산성탐방 지원센터. 거리 약 9.5km, 시간 약 5시간 50분. [사진 하만윤]

북한산성탐방 지원센터-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대남문-중성문-북한산성탐방 지원센터. 거리 약 9.5km, 시간 약 5시간 5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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