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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 6곳 암환자 8만명인데 … 존엄사 도입 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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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한 암환자가 혈액투석기 등의 연명의료 장치를 달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한 암환자가 혈액투석기 등의 연명의료 장치를 달고 있다. [중앙포토]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 제도가 시행된 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상급종합병원(대형 대학병원) 6곳이 아직 이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해 약 8만 명의 암 환자를 진료했는데, 환자 병세가 악화해 임종 상황이 되면 연명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시행 한 달 반 … 의료계 여전히 소극적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천 길병원, 양산부산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동아대병원, 한림대 성심병원, 조선대병원 등 상급병원 6곳이 아직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등록하지 않고 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하려면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복지부에 등록하게 돼 있다.

병원 내 윤리위원회 아직 없어

윤리위 등록 안한 상급종합병원

▶인천 길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한림대 성심병원 ▶조선대병원

복지부는 또 상급종합병원은 아니지만 규모가 큰 11곳의 병원도 아직 미등록 상태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목동병원,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부천성모병원, 인제대 해운대·일산 백병원, 차의과대 분당차병원, 학교법인을지학원 을지대병원, 창원 경상대병원 등의 대학 부속이나 관련 병원, 공공병원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중앙보훈병원, 지역 중심병원인 제주한라병원과 목포한국병원 등이다. 이들은 한 해에 적게는 수천명, 많게는 약 2만 명의 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암은 연명의료 주단이 필요한 대표적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윤리위원회를 등록하지 않은 상급종합병원 6곳은 지난해 8만1046명의 암 환자를 진료했다. 이 중 길병원은 1만8777명, 양산부산대병원은 1만8715명을 진료했다. 계명대 동산·동아대·한림대성심병원도 1만명이 넘는다.

이들 병원에서는 암·만성간경화·만성폐쇄성폐질환·에이즈 등 4가지 질환을 앓다가 말기가 돼도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표시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없다. 병세가 더 나빠져 임종 상황이 돼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 없다. 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도 마찬가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박미라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없는 병원의 환자가 임종 상황이 되면 연명의료를 하거나 이를 중단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윤리위원회 구성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아직도 큰 병원들이 준비를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리위원회는 외부인 1명 이상을 비롯해 5명 이상으로 구성한다. 연명의료 중단 관련 심의·상담·교육을 담당한다. 의사가 개인 신념을 내세워 연명의료 중단 시행을 거부할 경우 의사를 교체하고, 의사와 환자(가족)이 이러저러한 요청을 할 경우 윤리위가 나선다.

병원들은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길병원 한석영 홍보팀장은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간호사·상담사 인력과 상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중이며 조만간 시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양산부산대병원 관계자는 “부산대병원 본원과 연계해서 시행할지, 단독으로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며 “본원과 연계할 경우 연명의료 중단 대상 환자를 본원으로 전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박문희 홍보팀장은 “연명의료 중단 업무를 준비하던 담당 교수한테 개인 사정이 생겨 지연되고 있다. 이미 윤리위원회 위원을 내정한 상태다. 다음 달 중 윤리위원회를 등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윤성 국가연명의료관리기관 원장은 “의료계가 연명의료 중단에 너무 방어적인 자세를 보인다.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정리를 할 기회를 줘야 하고, 이를 위해 병원이 다소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능한 병원 115곳, 전체 3.4%

지난달 4일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한 후 이달 14일까지 윤리위원회를 등록한 의료기관은 115곳이다. 상급종합병원이 36곳, 종합병원이 59곳, 중소병원이 5곳, 요양병원이 14곳, 의원이 1곳이다. 처음(59곳)보다 늘긴 했지만 전국 중소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324곳의 3.4%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할 때 미리 의사를 결정해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만2402명, 말기나 임종기에 서명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자는 1245명이다. 1535명이 연명의료 중단(미시행 포함)을 택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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