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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열기 지우고 초심 찾아 세계선수권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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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의성 고운사에서 스님과 함께 명상 중인 김영미·김은정·김경애·김선영·김초희(왼쪽부터). [강정현 기자]

의성 고운사에서 스님과 함께 명상 중인 김영미·김은정·김경애·김선영·김초희(왼쪽부터). [강정현 기자]

12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 서기 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절은 신라 시대 학자 최치원의 호 ‘고운(孤雲)’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에서 낯익은 선수들이 명상에 잠겼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컬링 은메달리스트 김은정(28)·김영미(27)·김선영(26)·김경애(25)·김초희(22)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지난달 23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4강전 일본과 경기에서 8대7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강릉=뉴스1]

여자 컬링 대표팀이 지난달 23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4강전 일본과 경기에서 8대7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강릉=뉴스1]

한국 여자컬링은 평창올림픽에서 세계 1~5위 팀을 ‘도장 깨기’ 하듯 연파하며 컬링신드롬을 몰고 왔다. 스킵 김은정이 리드 김영미를 향해 목 터지라 외친 ‘영미~’는 2018년 최고 유행어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수 언론도 선수들 고향 의성의 특산품인 마늘을 따서 ‘갈릭 걸스’로 부르며 대서특필했다.

LG전자 무선청소기 모델이 된 여자컬링 국가대표팀. [사진 LG전자]

LG전자 무선청소기 모델이 된 여자컬링 국가대표팀. [사진 LG전자]

선수들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었다. LG전자 무선청소기와 롯데 의성마늘햄 광고를 찍었다. ‘피겨퀸’ 김연아 소속사와 ‘빙속황제’ 이승훈 소속사 등으로부터 영입 러브콜을 받았다.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유재석 등과 컬링 대결을 펼쳤다. ‘국민 영미’ 김영미는 “감기 탓에 마스크를 해도 눈썹만 보고도 알아본다”고 말했다.

의성 고운사 찾은 한국 여자컬링팀 #광고 촬영 등으로 바쁜 시간 보내 #대회 앞두고 집중력 높이려 명상

컬링 대표팀이 12일 경북 의성 고운사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김영미는 경기전날 많이 떨리는데 명상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잔잔해진다고 말했다.의성=강정현 기자

컬링 대표팀이 12일 경북 의성 고운사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김영미는 경기전날 많이 떨리는데 명상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잔잔해진다고 말했다.의성=강정현 기자

‘국민 스타’로 떠오른 이들이 갑자기 절집을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은 “6년 전 그때를 잊지 않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들은 2014 소치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고, 당시 김은정은 컬링을 그만둘 생각마저 했다. 선수들은 대표 탈락 후 고운사를 찾아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고운사 주지 호성 스님은 선수들에게 “힘든 상황이라 해도 평정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은정은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명상을 통해 (마음을) 잡아 한 곳에 머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미는 “김민정 감독님과 은정이만 불교 신자고, 나머지는 다른 종교다. 그렇지만 종교를 넘어 명상을 통해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컬링 대표팀이 12일 경북 의성 고운사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김민정 감독과 김은정만 불교신자고 다른 선수들은 기독교다. 하지만 종교를 초월해 명상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의성=강정현 기자

컬링 대표팀이 12일 경북 의성 고운사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김민정 감독과 김은정만 불교신자고 다른 선수들은 기독교다. 하지만 종교를 초월해 명상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의성=강정현 기자

대표팀은 오는 17~25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노스베이에서 열리는 2018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지난 9일 평창패럴림픽 개회식 때 성화 공동 최종점화자로 나섰던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순석(47)에게 김은정은 “만약 세계선수권 성적이 안 좋으면 컬링 인기가 반짝하고 없어질까 봐 불안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핸드볼은 국제대회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가, 곧 시들어 ‘한데볼’이라고도 불렸다.

9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주자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준석과 여자컬링 김은정이 성화 점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평창=임현동 기자]

9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주자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준석과 여자컬링 김은정이 성화 점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평창=임현동 기자]

호성 스님은 선수들에게 “평창올림픽에서 꽃이 됐지만, 아직 정상에 오른 건 아니다. 세계선수권에서 부진하면 독화살이 날아올 수 있다.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귀로 듣는 자성을 해야 넘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김은정은 “앞으로 더 노력해 컬링 인기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선수들끼리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까지 함께 하자고 의기투합했다”고 전했다.

의성=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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