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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재건축 안전진단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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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Q. 요즘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에 대한 기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정부가 재건축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안전진단이 뭐고, 재건축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제도 도입 #무분별 재건축 막고 집값 상승 억제 #정권 따라 구조안전성 비중 변경 #현 정부 들어서 기준 다시 강화 #“재산권 침해” “풍선 효과” 우려도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 … ‘새집 지어라’ 공인받는 절차죠"

A. 우선 재건축이란 말부터 짚고 넘어갈게요.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없듯 건물도 정해진 수명이 있답니다. 틴틴 여러분이 사는 아파트나 연립·단독주택도 마찬가지죠. 노후 정도가 심한 주택을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건 물론 주변이 슬럼화되고,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겠죠.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해결방안 중 하나가 재건축이에요. 재건축은 기존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를 완전히 새로 짓는 방식입니다. 재건축은 관련 법상 지은 지 30년이 넘은 주택이면 추진 가능해요.

그럼 연한만 도래하면 모든 주택이 재건축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안전진단’을 거쳐야 해요. 안전진단은 재건축 시행 여부를 판정하는 단계로,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입니다. ‘아파트가 너무 낡고 살기 불편해 새로 지어야 한다’고 공인받는 절차인 거죠. 만약 ‘집이 아직 쓸만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재건축을 할 수 없답니다.

[그래픽=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그래픽=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만들었어요. 무분별한 재건축과 이에 따른 집값 폭등 현상을 막자는 취지였죠. 그 전엔 지방자치단체별로 중구난방이었고, 그마저도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어요. 평가항목은 구조 안전성과 주거환경, 비용 편익(경제성), 설비 노후 등 4가지입니다. 구조 안전성은 말 그대로 건물이 구조적으로 얼마나 안전한지를 따지는 건데, 건물 기울기와 내하력(하중을 견딜 수 있는 능력), 내구성 등을 평가하죠. 주거환경은 주차 공간과 층간 소음, 일조 등에 대한 평가예요.

문제는 항목별 배점 비중이 그동안 들쑥날쑥했다는 점이에요. 그중에서도 구조 안전성의 비중 변화가 심했는데, 이는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랍니다. 정부는 구조 안전성 항목의 가중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재건축 규제를 조이고 풀었어요. 노무현 정부는 2003년 45%에서 2006년 50%까지 올렸고, 이명박 정부는 2009년 40%로 누그러뜨렸어요. 이걸 박근혜 정부는 2015년 20%로 확 낮추고, 대신 주거환경 비중을 15%에서 40%로 높였어요. 주차장이나 배관, 층간 소음 등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면 구조에 큰 문제가 없어도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한 거죠.

그래서일까요. 재건축 연한을 충족한 아파트 대부분이 안전진단을 무리 없이 통과하곤 했습니다. 50% 수준이던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비율이 2015년 이후 90%대로 오를 정도였죠.

상황이 이렇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어요. 재건축 남발과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강남 집값 불안의 진원지로 꼽히는 재건축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도 깔렸답니다. 먼저 20%까지 떨어진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다시 50%로 높이고, 주거환경 비중은 40%에서 15%로 낮췄어요.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없다면, 생활이 웬만큼 불편한 정도로는 재건축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거죠. ‘조건부 재건축’ 판정의 실효성도 강화했어요. 안전진단 결과 총 100점 만점에 55점(A~C등급)을 넘으면 ‘재건축 불가’ (유지·보수), 30~55점(D등급)은 ‘조건부 재건축’, 30점 미만(E등급)이면 ‘재건축’ 판정을 받아요. 조건부 재건축은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치명적인 결함은 없지만, 그냥 두기도 모호한 상태를 말해요. 이 경우 시장·군수가 집값 동향과 지역 여건에 따라 재건축 시기를 조정해왔는데, 말만 그렇지 별다른 제약 없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었어요. 2014년 이후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 중 96%가 조건부 판정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조건부 판정이 나면 의무적으로 공공기관(시설안전공단 등)의 검증을 한 번 더 받아야 합니다.

안전진단 강화의 후폭풍은 거셉니다. 안전진단 통과 여부에 따라 재건축 추진 단지 간 희비가 엇갈리는 게 대표 사례예요. 안전진단은 ‘주민 10% 이상 동의서 제출→안전진단 신청→안전진단 실시 결정(현지조사 등)→안전진단 기관 선정→안전진단 의뢰→안전진단 실시’ 순으로 이뤄져요. 새 기준 적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시행일인 이달 5일 이전에 ‘안전진단 업체와 계약을 맺었느냐’ 입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현대아파트와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우성2차 등은 아슬아슬하게 용역계약을 체결해 새 기준을 피했고, 계약을 못 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등은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게 됐어요. 이 때문에 목동을 비롯한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은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전진단 통과 여부가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재건축은 낡은 집 대신 새 아파트를 얻는 건 물론 돈을 버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한데 정부가 안전진단을 강화해 재건축 진입로를 크게 좁힌 거예요. 실제로 2002년 안전진단을 처음 신청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세 차례 고배를 마신 뒤 기준이 완화된 2010년에야 통과했어요. 그 기간 사업은 제자리걸음이었고요. 주민들이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시장에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주장도 있어요. 안전진단 규제를 못 피한 단지의 경우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고 매수세가 약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엔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재건축은 시작에서 완공까지 7~10년 정도 걸리는 장기 사업인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안전진단 기준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바람직하냐는 비판도 있고요. 반면 종전 안전진단 기준이 구조 안전성의 문제가 없는데도 사업 이익을 얻기 위해 사회적 자원 낭비를 부른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사실이에요.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안전진단 강화에 따른 시장 움직임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네요.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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