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에 대한 기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정부가 재건축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안전진단이 뭐고, 재건축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제도 도입 #무분별 재건축 막고 집값 상승 억제 #정권 따라 구조안전성 비중 변경 #현 정부 들어서 기준 다시 강화 #“재산권 침해” “풍선 효과” 우려도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 … ‘새집 지어라’ 공인받는 절차죠"
A. 우선 재건축이란 말부터 짚고 넘어갈게요.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없듯 건물도 정해진 수명이 있답니다. 틴틴 여러분이 사는 아파트나 연립·단독주택도 마찬가지죠. 노후 정도가 심한 주택을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건 물론 주변이 슬럼화되고,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겠죠.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해결방안 중 하나가 재건축이에요. 재건축은 기존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를 완전히 새로 짓는 방식입니다. 재건축은 관련 법상 지은 지 30년이 넘은 주택이면 추진 가능해요.
그럼 연한만 도래하면 모든 주택이 재건축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안전진단’을 거쳐야 해요. 안전진단은 재건축 시행 여부를 판정하는 단계로,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입니다. ‘아파트가 너무 낡고 살기 불편해 새로 지어야 한다’고 공인받는 절차인 거죠. 만약 ‘집이 아직 쓸만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재건축을 할 수 없답니다.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만들었어요. 무분별한 재건축과 이에 따른 집값 폭등 현상을 막자는 취지였죠. 그 전엔 지방자치단체별로 중구난방이었고, 그마저도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어요. 평가항목은 구조 안전성과 주거환경, 비용 편익(경제성), 설비 노후 등 4가지입니다. 구조 안전성은 말 그대로 건물이 구조적으로 얼마나 안전한지를 따지는 건데, 건물 기울기와 내하력(하중을 견딜 수 있는 능력), 내구성 등을 평가하죠. 주거환경은 주차 공간과 층간 소음, 일조 등에 대한 평가예요.
문제는 항목별 배점 비중이 그동안 들쑥날쑥했다는 점이에요. 그중에서도 구조 안전성의 비중 변화가 심했는데, 이는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랍니다. 정부는 구조 안전성 항목의 가중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재건축 규제를 조이고 풀었어요. 노무현 정부는 2003년 45%에서 2006년 50%까지 올렸고, 이명박 정부는 2009년 40%로 누그러뜨렸어요. 이걸 박근혜 정부는 2015년 20%로 확 낮추고, 대신 주거환경 비중을 15%에서 40%로 높였어요. 주차장이나 배관, 층간 소음 등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면 구조에 큰 문제가 없어도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한 거죠.
그래서일까요. 재건축 연한을 충족한 아파트 대부분이 안전진단을 무리 없이 통과하곤 했습니다. 50% 수준이던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비율이 2015년 이후 90%대로 오를 정도였죠.
상황이 이렇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어요. 재건축 남발과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강남 집값 불안의 진원지로 꼽히는 재건축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도 깔렸답니다. 먼저 20%까지 떨어진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다시 50%로 높이고, 주거환경 비중은 40%에서 15%로 낮췄어요.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없다면, 생활이 웬만큼 불편한 정도로는 재건축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거죠. ‘조건부 재건축’ 판정의 실효성도 강화했어요. 안전진단 결과 총 100점 만점에 55점(A~C등급)을 넘으면 ‘재건축 불가’ (유지·보수), 30~55점(D등급)은 ‘조건부 재건축’, 30점 미만(E등급)이면 ‘재건축’ 판정을 받아요. 조건부 재건축은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치명적인 결함은 없지만, 그냥 두기도 모호한 상태를 말해요. 이 경우 시장·군수가 집값 동향과 지역 여건에 따라 재건축 시기를 조정해왔는데, 말만 그렇지 별다른 제약 없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었어요. 2014년 이후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 중 96%가 조건부 판정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조건부 판정이 나면 의무적으로 공공기관(시설안전공단 등)의 검증을 한 번 더 받아야 합니다.
안전진단 강화의 후폭풍은 거셉니다. 안전진단 통과 여부에 따라 재건축 추진 단지 간 희비가 엇갈리는 게 대표 사례예요. 안전진단은 ‘주민 10% 이상 동의서 제출→안전진단 신청→안전진단 실시 결정(현지조사 등)→안전진단 기관 선정→안전진단 의뢰→안전진단 실시’ 순으로 이뤄져요. 새 기준 적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시행일인 이달 5일 이전에 ‘안전진단 업체와 계약을 맺었느냐’ 입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현대아파트와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우성2차 등은 아슬아슬하게 용역계약을 체결해 새 기준을 피했고, 계약을 못 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등은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게 됐어요. 이 때문에 목동을 비롯한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은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전진단 통과 여부가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재건축은 낡은 집 대신 새 아파트를 얻는 건 물론 돈을 버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한데 정부가 안전진단을 강화해 재건축 진입로를 크게 좁힌 거예요. 실제로 2002년 안전진단을 처음 신청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세 차례 고배를 마신 뒤 기준이 완화된 2010년에야 통과했어요. 그 기간 사업은 제자리걸음이었고요. 주민들이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시장에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주장도 있어요. 안전진단 규제를 못 피한 단지의 경우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고 매수세가 약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엔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재건축은 시작에서 완공까지 7~10년 정도 걸리는 장기 사업인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안전진단 기준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바람직하냐는 비판도 있고요. 반면 종전 안전진단 기준이 구조 안전성의 문제가 없는데도 사업 이익을 얻기 위해 사회적 자원 낭비를 부른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사실이에요.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안전진단 강화에 따른 시장 움직임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네요.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