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북 신규지원 때 인권과 연계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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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김정일 수령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하루빨리 북한체제를 무너뜨리고 주민들을 공산 독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는 북한체제에서 신음하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 북한과 맞서 싸웠거나 박해를 받았던 반공세력,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북한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북한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남한 국민의 입장에서만 보는 시각이다. 이들에게는 전쟁 방지가 제일 중요하다.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평화체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문제는 그 뒤에 천천히 제기해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낭만적 통일론자들, 친북세력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북한 붕괴를 정말로 반대해서라기보다는 공개적으로 붕괴론을 표명하면 남북대화가 막히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두 가지 생각은 다 문제가 있다. 어느 한편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남북 전체를 함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와 안보만 중시하고 그 대가로 북한 주민이 당하는 혹독한 인권 유린과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남북한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이 아니다. 북한 인권문제 제기 없이 북한 정부와 평화만 논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대가로 북으로부터 평화를 약속받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마치 일제시대의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것이다. 이 조약이 미국.일본의 입장에서는 평화조약이었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일본 식민지 지배의 국제적 공인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리는 탈북자들을 자주 만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만의 생각을 넘어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북대화를 할 때 평화와 인권을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체제의 붕괴를 열망하는 사람들도 한국인과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나 한국의 주류사회는 내심 북한 붕괴를 원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최우선적 과제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북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일을 도외시할 수 없다. 이 점은 야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탈북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에 차지 않겠지만 한국 정부는 북과의 대화의 틀 안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지, 탈북자들을 따라 북한 민주화운동에 나설 수는 없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넘어 북한 인권문제 제기를 위한 대연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한국인이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찬성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 유독 북한에서만 예외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충분히 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붕괴론이든 아니든, 한국 정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은 크게 다를 수 없다. 즉 이제까지의 대북 지원이나 경제협력은 그대로 계속하되 신규로 행해지는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은 북한 인권 개선과 연계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식량 지원은 세계식량계획(WFP)과 동일하게 모니터링(분배 확인)을 하자는 것이다. 인권 개선이 없으면 대북 지원 자체를 중단하자는 주장은 또다시 수백만이 굶어 죽는 사태를 재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장할 수는 있어도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경석 목사·선진화 정책운동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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