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학력 취업난 속 신조어 만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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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의 한 명문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예정자인 장양(張陽).그는 같은 학과 친구 두 명과 함께 올 초 베이징에 왔다.2008년 열리는 올림픽 준비 열기로 베이징이 어느 도시보다 취업기회가 많을 것으로 그들은 예상했다.하지만 취업의 좁은문은 열리지 않았다.전국에서 몰려든 취업 준비생들로 경쟁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3월 들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들은 "취업이 되든 안되든 베이징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고학력 미취업자들의 베이징 러시가 극심하다.지방에서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보니 張처럼'베이징 드림'안고 상경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을 칭하는'베이퍄오(北漂)족'이란 말도 유행하고 있다.'베이징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란 의미다.1990년대 중반 연예계 스타를 꿈꾸며 베이징에 온 연예 지망생들에 국한돼 쓰던 말이 요즘엔 구직자,특히 고학력 미취업자들까지 확대돼 쓰이고 있다.베이징에 오는 대졸 구직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부터다.

인민일보 인터넷판은 23일 관계 전문가들의 집계를 인용,"베이퍄오족이 최대 38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이는 유동 인구를 포함해 약 1500만 ̄16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 베이징 인구의 24 ̄25%에 달한다.중국 국가발전계획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생이 지난해보다 75만명 늘어난 413만명으로 집계돼 일자리를 찾아 베이징 등 대도시를 찾는 미취업자들의 발길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베이퍄오족은 주민등록의 일종인 베이징 후코우(戶口)가 없다.이 때문에 자녀교육.의료보험 등 국가의 각종 복지혜택을 못 받을 뿐 아니라 집.차 등을 살 때 세금 부담도 크다.후코우 없이 베이징에 눌러 산다는 점에서 일용직 육체 노동자인 농민공(農民工)과 차이는 없지만 베이퍄오족은 대졸 이상의 교육을 받은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다.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거나 비정규직 신분으로 사무직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여학생들의 취업난은 더 심각하다.대졸자의 평균 50%도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다고 중국 언론은 보도한다.이 때문에 취업 대신 일찌감치 결혼을 택하는 여학생들,이른바 급혼(急婚)족도 나타났다.최근 충칭신보는 "충칭시내 대학의 4학년 여대생들이 결혼중개업체의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면서 "전에 없던 현상"이라고 전했다.충칭의 한 대학 4학년생 옌이(嚴怡.여.22)는 "능력 있는 남편을 통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면 결혼도 훌륭한 취업 전략"이라고 말했다.신문은"병이 위급하다보니 아무 의사나 찾는 꼴(病急亂投醫)"이라며 "여대생들의 취업 스트레스가 사회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도 취업난을 가중시키고 있다.최근 베이징대 박사학위자가 지린(吉林)성의 한 고등학교의 교사 임용에서 떨어졌다.출신 학부가 일류대가 아니었다는 것이 탈락 사유다.당장 학력사삼대(學曆査三代)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상대방의 윗 삼대까지 살펴보고 혼담을 주고받는다는 사삼대(査三代)를 빗대 중국 사회의 '일류대병'을 꼬집은 것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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