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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탄핵 1년 … 우리는 달라졌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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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오늘로 1년이다. 국민의 81%가 탄핵을 찬성하고,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국회의 탄핵 소추를 인용한 결과였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을 경험한 이 사회는 그로부터 1년 후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소 실망스럽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가장 큰 요인은 국정 농단이었다. 대통령의 뒤에 ‘빨간 펜을 든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가 암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불통’이었다. 대통령의 주변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극소수만 있었고, 비서실장조차 대통령의 소재를 모를 정도로 청와대는 불통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새 정부가 야당과도 소통하는 협치와 예스맨이 아닌 사람들도 등용하는 탕평을 실천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던 야당은 청산돼야 할 적폐 세력으로 몰렸고,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등용할 것”이라던 인사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됐다.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 강행되고 비서실장이 부랴부랴 두바이로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설명조차 없었다. 남북 화해 무드와 ‘미투(#MeToo)’ 국면에 묻혀 관심을 덜 받고 있긴 하지만 소통의 청와대라 하기엔 거리가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몰락한 보수 정치권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1년이 지났건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박근혜 시대의 새누리당에 머무르고 있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개혁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있어야 할 텐데 지난 1년 동안 당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진보 진영에 주로 가해진 미투 타격에도 불구, 지지율이 10%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한 양상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큰 이슈가 됐던 게 세월호 침몰에 대한 늑장 대처였다. 어찌 보면 국정 농단보다도 더 국민적 공분을 샀던 게 “국민 목숨보다 얼굴 주름이 더 중요하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국민 목숨이 더 중요해진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나아진 게 없다는 말이다. 밀양과 제천 등 곳곳에서 잇따른 화재는 사실상 예견된 참사였다. 달라진 것이라면 대통령이 참사 현장에 발 빠르게 달려가는 것뿐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불과 1년 전 역사에서도 못 배우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감성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만이 문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과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협치를 요구하려면 야당 먼저 바로 서야 한다. 스스로 노력하는 국민만이 훌륭한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만 국가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연 지금 우리가 그런가 진지하게 되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