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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워치

지구촌 희망에 역행하는 시진핑과 트럼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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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지난주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두 핵심 지도자가 놀라운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야심 찬 계획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치울 수 있는 정치적 장치 마련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자멸적 결정으로 대혼란의 시기를 불렀다.

시진핑은 연임 제한 규정 없애며 #마오쩌둥 식 권력 독점을 꿈꾸고 #트럼프는 관세 부과 등의 조치로 #글로벌 경제와 외교적 신뢰 해쳐

주석·부주석 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기 위한 시 주석의 공산당 당헌 개정 제안은 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살펴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진압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덩샤오핑(鄧小平)은 민주주의 옹호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권력 독점으로 중국이 치른 대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덩샤오핑이 남긴 최고의 정치적 유산은 개혁·개방 정책과 공산당 당헌 수립이다. 정치 제도화를 통해 주석 교체를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에는 당 내부도 민주적으로 진일보했다.

시진핑 시대에 이러한 전진은 중단됐다. 그런데도 덩샤오핑의 유산이 보존되리라는 낙관론이 펼쳐졌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재평가하고 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서구가 어떻게 중국을 잘못 짚었는가(How the West Got China Wrong)’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현실을 잘 설명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중국에 대한 견제와 개입으로 중국 내부에서의 발전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러한 발전으로 중국이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최소한 다원주의 국가로 변하고, 시장 친화적 경제에 대한 열망도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두 희망이 모두 사라졌다. 중국 정치 제도는 과거로 역행하고 있으며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등 국가 주도의 사업이 늘고 있다.

글로벌 워치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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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의 전략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내부의 거센 반발에 부닥칠 수도 있다. 물론 현재는 그가 중국의 힘을 과시하는 데 리더십을 집중시키고 정치 역량을 키우게 됨에 따라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이기는 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비해 한·중 관계는 개선되었지만 한국이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악관은 혼돈의 한 주를 보냈다. 해외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백악관의 복잡한 ‘궁정 정치’를 쫓아가기가 버겁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 신임했던 고문들의 사임,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과의 공개 설전,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특검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백악관에서는 일관성 있고 신중한 정책 결정을 보기가 어렵다. 성급하게 마련된 철강·알루미늄 업계 경영자 면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즉흥적으로 관세 부과 조치를 발표했고, 글로벌 주식 시장은 요동쳤다. 관세 부과 그 자체보다 향후 세계무역기구(WTO)와 무역 대상국, 수입업자와 그들을 대변하는 로비스트가 펼칠 혼란스러운 과정이 미국에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세계 경제 개방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표류 중이라는 것보다 미국의 정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구상처럼 성급하고 무분별한 일을 벌일 수도 있어서는 아니다. 외교 정책에서의 일관성 결여는 미국의 위상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대담한 권력 집중화 시도 또한 중국의 민주성에 대한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

한국의 박근혜 전 정부는 폐쇄적이고 무책임한 리더십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표본적으로 보여줬다. 현재의 미국은 그것과는 다소 다른 교훈을 제공한다. 현대 미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를 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외교 현안과 관련해 한국 국민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렇다. 미국 정치는 반대 세력을 원수처럼 대하면 정치권 밖의 세력이 득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경쟁하는 동시에 상호 존중하며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민주주의 규칙이 제대로 작동한다. 어려운 외부 환경에 직면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 규범과 화합이 필요한 때다. 남북한 사이가 아닌 한국 안에서 말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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