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旬 대학부총장이 문단 등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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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현직 대학 부총장이 이순(耳順)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했다. 주인공은 건국대 김유조(金有祚.60) 부총장.

영문학 교수로 미국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 작품을 전공한 金부총장은 4일 '하노이-하롱베이, 오키나와 처녀' (건국대 출판사)라는 독특한 제목의 창작 단편집을 출간했다.

'하노이…'는 새로운 소설 장르인 '팩션(faction)' 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팩션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조합한 용어로 개인적 경험이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픽션을 적절히 섞어 현실감 있게 재구성한 소설을 뜻한다.

金부총장은 "작품의 소재는 내 자신의 체험에다 주변 사람의 이야기나 언론 보도 등에서 접한 내용을 나름대로 취재 과정을 거친 뒤 상상력을 동원해 재가공했다"고 설명했다.

창작집은 '하노이-하롱베이''오키나와 처녀''여섯 번째 여자' 등 22개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모든 작품은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1인칭 시점을 채택했다.

"사실인 척하려다 보니 주인공이 1인칭이 되고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자기고백적인 혐의를 쓰게 되어서 결국 진하게는 못 그리고 수채화가 되고 말더군."(여섯번째 여자)

작품 곳곳에는 소설가를 꿈꿨던 '문청'(문학청년) 시절의 추억과 강단에서 느꼈던 소감, 사회에 대한 성찰이 녹아 들어 있다.

"'지체아를 유기하는 매서운 모정의 나라''수잔 브링크스의 아리랑'… 나는 무엇을 어떻게 조합해야 모국어도 모르는 한 청년의 오늘 청사진이 나올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아리랑)

르포르타주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도 있다.

"J회장이 이승을 하직하던 날 하남시 근처를 통과하게 됐다. 그런데 굵은 불비 같은 것이 죽죽 내리더란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국가적 대기업의 계동 본사에 상등(喪燈)이 달리고 왕회장이 돌아가셨다는…"(혼불)

金부총장은 "현대인들은 현실이 소설보다 휠씬 더 극적인 시대에서 살고 있지만 소설 문학도 허구를 딛고 현실 속에서 생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앞으로도 치열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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