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토라진 北·中에 유화 손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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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is my friend doing? I like him."

(친구는 잘 지냅니까? 나는 노대통령을 좋아합니다)

3일 오후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한 윤영관(尹永寬)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얼굴)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안부를 이렇게 물었다. 지난 5월 워싱턴에서 盧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친구'라는 표현을 썼던 부시 대통령이다.

尹장관의 백악관 방문은 당초 일정에 없었다.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약 20여분간 이어진 대화에서 부시 대통령은 베이징(北京) 6자회담을 성공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고 尹장관은 전했다.

尹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북핵 사태를 6자회담으로 풀겠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회담은 지속될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고 돈독한 관계를 보이기 위해 백악관 만남을 마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이날 尹장관에게 6자회담 성공 의지를 밝힌 것은 중국과 북한에 미국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북한이 베이징 회담 직후부터 "회담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됐다"고 비난 공세를 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부시 대통령이 직접 "6자회담을 성공시키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 회담을 성공시키려면 다음 회담 때에는 미국이 뭔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흥정은 주고 받는 게 있을 때 성사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 파월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고 부시 대통령은 분명히 말했다. 그 기초 위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은 6자회담 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6자회담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미국을 비난한 데 대해 아무런 대꾸가 없는 것도 어떤 식으로든 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미국의 기본입장은 여전히 강온책 병행이다. 파월 장관은 이날 "북한이 마약 등을 밀수하는 행위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또 "아직 유엔의 행동을 촉구할 계획은 없지만 북핵 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이미 유엔 안보리에 올라가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순간에 대비하는 포석이다.

부시 행정부로선 이라크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데다 재선운동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6자회담의 실패'라는 외교적 재앙을 서둘러 자초할 입장이 아니다. 북핵 사태는 매우 미묘한 전환점을 맞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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