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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미투 얘기하며 미안하다 말해 … 그날 또 그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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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왼쪽)의 비서 김지은씨가 안 지사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했다. 오른쪽은 비밀메신저 대화 내용. [중앙포토]

안희정 지사(왼쪽)의 비서 김지은씨가 안 지사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했다. 오른쪽은 비밀메신저 대화 내용. [중앙포토]

2월 25일.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1월 26일)의 미투 폭로가 있은 지 한 달 되는 날. 사회 각계에서 성폭력 미투 폭로가 한창 이어지고 있던 그때, 여권의 유력 정치인에 의해 또 다른 피해 사례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33)씨는 “안지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며 “미투 폭로 한 달이던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김지은씨 이르면 오늘 성폭행 고소 #작년 스위스·러시아 출장 때 당해 #안, SNS로 “다 잊고 풍경만 기억을” #주변에 SOS 보냈지만 도움 못받아 #“다른 피해자 있어, 국민이 지켜달라” #안 지사 연락 끊고 잠적, 관사 불꺼져 #어제 폭로 전 도청서 미투 지지

김씨에 따르면 당일 안 지사는 밤늦게 김씨를 불러 미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안 지사가 ‘내가 미투를 보면서 너에게 상처가 됐음을 알게 됐다. 미안하다. 괜찮았느냐’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오늘은 안 그러겠구나’ 생각했는데 결국엔 그날도 그렇게 하더라”.

김씨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의 더불어민주당 경선 때 안 지사 캠프에서 일했다. 5월에 대선이 끝나고 한 달 뒤께 안 지사 수행비서가 됐다. 이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이후 8개월 동안 네 차례 성폭행과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성폭행을 당한 구체적 시기와 장소도 언급했다. 주로 해외 출장을 가서 안 지사를 수행할 때였다. 지난해 7월 러시아 출장, 9월 스위스 출장 등 일정이 끝난 후라는 게 김씨 주장이다. “지속적인 성폭력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선배들은 ‘거절하라’고만 했다”고 그는 말했다.

충남도지사 정무비서 김지은

충남도지사 정무비서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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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당시 안 지사의 요구에 머뭇거리며 ‘어렵다’고 했다. (나로선) 최대한의 방어였다. 최대한의 거절이었다. 안 지사도 알아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안 지사가 이를 무시하고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그는 주장했다.

성폭행 전후 안 지사는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방을 통해 김씨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김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저한테 계속 미안하다고 하고, 도덕심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내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잊어라. 다 잊어라.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만 기억하라’고 그가 말했다”고 덧붙였다.

미투 폭로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로 2월 25일 밤 사건을 꼽았다. 김씨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안 지사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속적인 성폭행에 김씨는 별다른 저항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안 지사는 ‘수행비서는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라고 해야 한다. 그림자처럼 살아라. 네 의견을 밝히지 말라. 너는 나를 비춰주는 존재다’고 말했다”면서 “그가 가진 권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늘 수긍하고 그의 기분을 맞추고 표정을 다 맞춰야 하는 것이 수행비서의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 폭로 이후에 ‘제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국민들이 저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면서 “(안 지사의)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변호인단을 꾸려 이르면 6일 안 지사를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안 지사 측은 “수행비서와의 부적절한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씨는 “저는 지사님이랑 합의를 하고 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무조건 따라야 하는 사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한편 안 지사는 5일 도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직원들과의 모임에서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은 남성 중심적 성차별의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며 “인권 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충남도청은 충격에 휩싸였다. 홍성의 안 지사 관사는 불이 꺼져 있었다. 안 지사는 물론 측근들까지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도청의 한 인사는 “사실이라면 충남도정 역사상 가장 큰 치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홍성=신진호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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