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감정을 극복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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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미대사관에 대한 공격이 다시 빈번해 지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에 있는 미대사관 구내에 사제 폭발물이 투척된 데 뒤이어 23일에는 광주에서 전남대학생 3명이 미문화원 마당에 화염병을 던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 방법으로 반미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는 다른 모든 형태의 폭력성과 마찬가지로 무모하고 위험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폭력적 반미시위에 대해 우리는 한미관계의 총체적 시각을 정리함으로써 극단적인 감정으로 흐르고 있는 일부의 반미분위기를 냉철히 평가할 필요를 느낀다.
이미 지적되었듯이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대미감정은 애증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해방 후 한국이 추구해온 정치, 경제적 개발의 모델을 미국으로 삼았던 데서 오는 우호감과 최대 통상 상대국으로서의 호혜적 의존성이다. 반미감정이 표면화하기 이전인 70연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하나의 개발모델로 삼아왔고 우리 사회를 이끈 엘리트 집단도 대부분 미국 교육을 받아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지정학적 전략 속의 일개 졸로 취급되어 왔다는 역사적 평가도 우리 의식의 저류에 흐르고 있다. 전후 한반도의 분단에서부터 역대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묵인 내지는 방조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한정책은 일관되게 자국이익의 수로라는 대원칙에 입각해서 추진되어 봤으며 그 과정에서 한 국민의 이익이 희생된 경우가 많았다는 인식이다.
그와 같은 인식은 특히 5공화국의 생성과정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특히 광주사태 때 어떤 관련을 갖고 있었느냐는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 감정은 다같이 총체적 안목에서 재평가의 여지가 많은 쟁점들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미관계가 내포하고 있는 이와 같은 양면성과 거기서 비롯된 대미 외교의 파행성을 극복하는 길을 찾음으로써 반미감정의 매듭을 푸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한미관계에서 선악의 도덕적 기준을 최소한으로 줄여 비정한 국가 대 국가관계로 보는 성숙된 시각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사회의 상층부가 갖고 있던 대미의존, 수혜 기대적 성향을 버리고 또 젊은 층은 국가관계를 선악의 이상적 기준에서 벗어나 국가 관계에 으레 작용하는 권력의 속성을 직시해야 된다. 그것이 정상적 국가관계에 당연히 적용되어야 할 실용주의적 대등성이다.
그런 전체를 놓고 보면 미국이 스스로의 이익을 양보하면서까지 한국의 민주화를, 안보를, 통상이익을 도와주리라고 기대하는 환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전제한 배신감과 반감도 줄어들 것이다.
「국가관계에 있어서는 영원한 적은 없고 국가이익만이 영원하다」는 경구는 앞으로 오래 계속될 한미관계의 건전한 유지를 위해 명심해야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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