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작품] 93세 '문학청년'한용성翁의 소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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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 신인문학상 심사위원들 사이에 화제가 된 작품은 예심 통과작이 아니다. 1910년생의 응모작 '1930년 무렵의 평양 기생과 악동들'이다. 인천에 사는 한용성옹이 쓴 단편소설은 구순의 할아버지 솜씨로 보이지 않을 만큼 경쾌하고 신선하다.

"각설하고, 그럼 악동들이 놀아나던 평양의 기생 얘기를 적어보기로 하자"로 시작하는 소설 들머리는 구수하면서도 재치가 넘친다. 중학생 나이에 기생집을 출입한 일제 식민지 시대 평양의 장난꾸러기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지은이는 화대 얘기부터 기생명부까지 시시콜콜 당대의 허랑방탕한 주색잡기 한 꾸러미를 풀어놓았다.

도쿄(東京)대를 나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제작자로도 활동했던 한옹은 93세인 지금도 글쓰기가 취미인 만년 문학도. 잘 듣지 못하는 외에는 정정해 하루 종일 독서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며느리 김옥녀씨는 "워낙 글짓기를 좋아하셔서 동네에서 소설가 노인으로 이름이 났다"고 귀띔했다.

소설은 기생들과 놀아난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난봉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임을 안 주인공 '나'가 집을 나온 지 한달이 되던 설날 아침에 여관에서 동무와 귀가를 결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금연.금주를 다짐하며"이제 우리는 악동이 아니구 선동(善童)이 되는거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이 작품을 세태소설이자 교훈소설로 읽게 한다. 작가는 자전소설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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