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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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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니 J 젤린스키. 캐나다의 인생 컨설턴트다. 'The joy of not working'이란 책에서 "일을 많이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노는 것의 미학을 극단적으로 강조했다. 절대적인 백수 예찬론자다. 자신도 일주일 중 나흘만 일한다. 알파벳 R자가 들어가지 않는 5월(May), 6월(June), 7월(July), 8월(August)에는 아예 일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상당수 사람이 꿈꾸는 삶일 것이다. 일을 하는 사람보다 실업자.은퇴자가 더 행복하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한 번뿐인 인생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다. 이미 가버린 과거에 집착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인생은 바람 앞의 등불이고, 풀 끝에 맺힌 이슬 같다"는 불교의 선(禪) 사상도 인용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now and here)'의 개념이다. 지금 당장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이론이다.

"노동윤리는 노예윤리"라며 노동의 불합리성을 얘기한 사상가가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동의 목적은 여가를 얻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플라톤도 노동에 매달리는 것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통을 받으며 쾌락을 느끼는 마조히즘적 경향이라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노동에 집착하는 것도 정신병 증세"라고 게으름을 찬양했다.

여기서 퀴즈 하나.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아마도 상당수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말할 것이다. 일 말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명함 한 장이 자신의 모든 것인 양 우쭐해 하는 바보가 부지기수다. "진정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젤린스키는 대부분이 행복과 경제적인 성공을 동시에 원했다고 한다. 돈과 성공.행복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얼간이들이니깐.

우리나라 대학생이 극심한 취업난을 뚫기 위해 연평균 188만원을 들여 과외를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회생활의 첫출발 단계부터 순탄치 않은 것 같아 안쓰럽다. 하지만 "돈을 벌려고 이 아까운 시간과 나의 열정을 버릴 수 없었다"고 했던 한 철학자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재현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