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묻지 않고 거스름돈도 없다··· 이상한 출판기념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4일 오전 10시30분쯤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 30분 뒤 시작될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건물 앞 도로에는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아직 앳된 얼굴을 한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성들이 주차 관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건물 주차장 쪽인 출판기념회장 입구에는 같은 티셔츠를 입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테이블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책을 서류봉투에 담아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테이블 뒤편으로도 노란 끈으로 고정된 묶음의 책 수백권이 쌓여있었다.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으로 출마할 예정인 강 전 의원의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책을 구매하기 전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몇장이라도 읽어보는 이들은 없었다. 마치 '의무적으로' 축의금을 내려온 결혼식 하객처럼, 미리 준비한 흰 봉투에 담은 현금을 건네고는 책만 받아갈 뿐이었다.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연령과 직업이 모두 다른 책 구매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책값을 묻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실제 책값은 1만5000원이었지만, 대다수 구매자가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지갑에서 5만원, 10만원을 꺼내 흰 봉투에 담아 직육면체 형태의 통에 넣고는 책 한두 권을 받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책 판매자들이 거스름돈을 되돌려주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지인들과 함께 온 한 구매자가 수십만원을 담아 건네고는 “그런데 거스름돈은 주나요?”라고 묻자 주변인들은 ‘눈치 없는 소리를 한다’고 나무랐다. 책 판매자도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책값은 현금으로만 받았다.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출판기념회를 찾은 책 구매자들이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대다수 구매자는 책값이 담긴 봉투 겉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일부 구매자들은 봉투와 함께 책 판매대 위에 올려진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다. 지인들을 대표해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듯한 한 노인은 손바닥만 한 수첩에 적힌 지인들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방명록에 옮겨 적느라 분주했다. 책값을 넣는 통 옆에는 명함 수거통도 있었다. 'XX통신' 'XX전기' 등 사업주들의 명함이 있었다.

 출판기념회장에는 의원 배지를 단 지방의원, 지역 대학 관계자, 기업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렇다할 직함이 없는 참석자는 서둘러 책만 구매한 채 돌아갔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꺼번에 책 수십권을 샀다. 3권을 산 구매자는 “강 전 의원과 잘 안다”고만 했다.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한 건물에서 열린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강기정 전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출판기념회 본행사는 행사 진행자로 나선 모 광주시의원이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저자인 강 전 의원이 책 내용과 관련해 몇 마디를 하는 정도였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본행사는 30분 만에 끝났다. 한 관계자는 “이런 본행사가 오후 2시, 오후 4시에도 열린다”며 “책은 오후 6시까지 판매한다”고 했다.

출판기념회가 강 전 의원만의 일은 아니다. 현직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윤장현 광주시장은 앞서 지난달 3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일찌감치 광주시장 선거 도전 의사를 밝힌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도 지난해 12월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임우진 서구청장 등 구청장 출마 예정자들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무원은 “행사 현장에는 없지만, 공무원들이 참석자 동원과 홍보 등에 투입되기도 한다”며 “일부 간부 공무원들의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선거 출마 예정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책을 사기도 한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