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북 특사, 김정은 비핵화 의지 있는가부터 살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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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통보한 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일 기자들에게 “대북 특사 파견 시기는 이달 20일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북 특사로는 현재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4월 한반도 위기설 전 특사 파견 이해해도 #선 북·미 비핵화 대화 원칙 흔들리면 안 돼

대북 특사 파견은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에 양면성이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대화 국면을 지속시킨다는 측면에서 대북 특사 파견은 남북 관계에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한·미 관계에 있어 대북 특사 파견은 엇박자를 더욱 부각시킬 것이란 우려도 있다. 1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뒤 청와대와 백악관 발표를 보면 그런 엇박자가 뚜렷하다.

백악관은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명확하고 흔들리지 않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라는 목표로 진행돼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반면에 청와대 발표는 ‘완전’ ‘검증 가능’ ‘불가역적’이란 비핵화 조건이 달려 있지 않은 원론적인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북·미 대화의 문턱을 낮춰 달라”고 공개 요구했음에도 북·미 대화 문턱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같이 가야 할 남북, 한·미 관계가 따로 갔을 때 생긴 결과다.

자칫 4월 초 한·미 연합군사훈련 개시와 함께 북·미 간 갈등으로 인해 한반도가 평창올림픽 이전의 긴장 상태로 되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문 대통령이 대북 특사 파견을 서두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대북 특사를 보내더라도 무엇을 위한 특사인지, 방북 조건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북 특사의 방북 목적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인지, 북·미 비핵화 대화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가 남남갈등을 무릅쓰고 받아들인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방한 중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취지의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당국자들이 전하고 있다. 겉으로는 훈풍이 부는 듯해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전혀 바뀐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는 논리로 정상회담을 서두르려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사 표명이 없는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안 그래도 엇박자를 내고 있는 한·미 동맹을 더욱 균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미 문 대통령은 ‘여건의 성숙’과 ‘우물가 숭늉’을 언급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북·미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상황이 어렵다고 이런 큰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 북·미 비핵화 대화의 진전 없이 남북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대북 특사 활동의 방점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만나 비핵화 대화에 나설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어야한다. 선(先) 비핵화 의지 확인, 후(後) 남북 정상회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