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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처럼 … 45m 쓸었는데 200m 전력질주 한듯 헉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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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평창서 뜬 컬링 직접 해보니

26일 오전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컬링장에서 서울시청 컬링팀 소속 선수들이 빙판을 닦아 스톤의 속도와 진로를 조절하는 스위핑을 연습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6일 오전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컬링장에서 서울시청 컬링팀 소속 선수들이 빙판을 닦아 스톤의 속도와 진로를 조절하는 스위핑을 연습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26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실내 빙상장 내 컬링장. 서울시청 소속 선수 5명과 강원도청 선수 5명, 남춘천여중 선수 6명이 3개의 시트에서 훈련이 한창이었다. “영미~”를 찾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경기장 가득 “얍” “헐” “업”하는 고함이 울려 퍼졌다. 얼마 전만 해도 외계어로 들리던 기합 소리지만 여자 컬링 대표팀이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이젠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구호다. 선수들이 연습을 마친 뒤, 실제로 컬링을 배워봤다. 컬링은 시트라 불리는 직사각형 모양의 빙판에서 진행된다.

생각보다 만만찮은 운동량 #20㎏ 스톤 빙판에 놓기도 힘들어 #“1㎝만 잘못놔도 막판 40㎝ 삐끗” #생활체육에도 ‘컬링 붐’ 예감 #서울연맹 카페 가입 1000명 늘고 #의정부에 6개 시트 경기장 곧 개장 #일반인이 컬링 해보려면 #컬링연맹 회원 가입 뒤 강습 신청 #참가비는 신발·브룸 포함 2만원

“오른발을 발 구름판에 고정하고 쭉 미세요.” 서울시청 컬링팀 리드인 정병진(22) 선수는 ‘핵’(hacks)이라고 불리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발판에 기자의 발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스톤을 목표 지점에 보내기 위한 사전 동작이다. 그는 “20㎏ 무게인 스톤을 미는 동작과 빗자루질을 하듯 얼음판을 닦아내는 동작만 익히면 일반인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혁 선수가 스톤을 목표지점으로 보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수혁 선수가 스톤을 목표지점으로 보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45m 떨어져 있는 하우스로 스톤을 미는 동작인 ‘딜리버리’는 안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먼저 발판에 발을 고정하고 쪼그리고 앉는다. 이후 엉덩이를 들고 스톤을 몸쪽으로 살짝 당긴 뒤, 발판을 차며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나간다.

엉덩이를 드는 자세를 하니 허벅지에 근육이 땅겼다. 발판을 최대한 힘차게 밀었지만, 좌우로 휘청거리며 스톤을 놓아야 하는 선인 호그라인 근처에도 못 갔다. 자세를 숙인 채 45m 떨어진 목표 지점을 바라보니 파란색과 빨간색 선만 겨우 구분됐다. 서울시청 컬링팀 이재호 코치는 “골프 칠 때 홀컵이 보여서 치는 게 아니듯 컬링도 반대 지점에 있는 우리 편 선수가 지시해 주는 대로 믿고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TV에 나오는 컬링 선수처럼 스톤에 살짝 회전을 주고 싶었지만 무거워서 그냥 놓기도 어려웠다. 이재호 코치는 “스톤을 놓을 때 1cm만 어긋나도 마지막엔 40㎝가 틀어진다”며 “사격을 할 때 방아쇠를 누르기 전 호흡을 멈추듯이 발을 구른 뒤 호흡을 멈춰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오른쪽)가 정병진 선수에게 스위핑을 배우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태윤 기자(오른쪽)가 정병진 선수에게 스위핑을 배우고 있다. [장진영 기자]

매끈할 거라고 생각한 컬링장 바닥은 도톨도톨했다. 바닥에는 스톤과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작은 얼음 알갱이가 뿌려져 있다. 스위핑은 얼음 알갱이를 녹여 스톤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호그라인을 떠난 스톤이 목표지점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초다. 컬링장 온도는 영상 6도 정도로 쌀쌀했지만 20m도 채 가기 전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재호 코치는 “45m를 스위핑하면 200m를 전력 질주하는 효과”라며 “1엔드당 360m씩 뛰면 10엔드를 모두 마칠 때 최대 3.6㎞ 길이 빙판을 닦아야 하니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림픽에선 8~10엔드로 진행하지만, 일반인은 4엔드나 6엔드가 적당하다고 한다. 서울시청팀 김수혁(34) 선수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기만 해도 즐거운데 컬링에는 볼링과 당구, 구슬치기의 매력이 다 있다. 직접 해보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장 상태나 상대 스톤 위치 등 많은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선수 사이 호흡과 소통이 중요하다. 이재호 코치는 “3~4명이 함께 라인을 보고 스위핑을 하고 작전도 그때그때 바꿔야 하므로 대화가 끊기면 안 된다”며 “사회성이나 리더십을 길러 주는 데도 좋다”고 말했다.

컬링, 이것이 필요하다

컬링, 이것이 필요하다

일반인이 컬링장을 이용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수도권에는 태릉 국제빙상장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 컬링장이 있지만, 규모가 작고 선수들이 훈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태릉국제빙상장은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선수 훈련이 없는 시간대에 일반인이 컬링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컬링장을 이용하려면 ‘서울시 컬링연맹’이라는 인터넷카페에 가입한 뒤 회원 대상 강습 신청을 하면 된다. 참가 비용은 브룸과 신발을 빌리면 2만원, 장비를 가져오면 1만5000원이다. 이재호 코치는 “‘서울시 컬링연맹’ 회원은 지난 10여년간 50명 수준이었는데 최근 가입 요청자가 100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컬링 역사는 짧다. 90년대 후반 서울 성신여대 등 대학에 컬링팀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기엔 컬링장이 없어 스케이트장에 가서 새벽이나 야간에 컬링 연습을 했다고 한다. 2001년 컬링을 시작한 정재석(45) 경기도 컬링 경기연맹 사무국장은 “스케이트장은 컬링장과 다르게 빙판이 매끄러우니 직접 얼음 알갱이를 만들면서 했다”고 기억했다. 서울시청 이재호 코치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너희 때문에 다쳤다’고 항의하면 경기장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제대로 변명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달 말 경기 의정부시 녹양동에 국제 규격의 컬링 경기장이 문을 연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50억원을 지원하고 도비·시비를 합해 99억8000만원이 들어갔다. 2007년 개장한 경북 의성군에 이어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국내 두 번째 컬링 전용 경기장이다.

경기장에는 국제규격인 시트 6개를 비롯해 관람석 243석에 스톤 추적 카메라까지 갖췄다. 일반인은 개관 뒤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장을 빌릴 수 있다. 볼링장처럼 경기장에서 신발만 빌리면 된다. 의정부 컬링장의 대관료는 시트 1개를 기준으로 2시간당 10만원 수준이다. 보통 컬링은 10명이 하는 경기이므로 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1시간당 5000원에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정재석 사무국장은 “이번에 의정부시에 새로 한 곳이 생겼지만 캐나다 캘거리에는 컬링장이 10개 있다. 한국도 시·도별로 컬링장이 1~2개 정도 있어야 시민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스웨덴전 9엔드서 포기한 한국팀 … 깨끗한 패배, 그게 컬링 매너

“진정한 컬링 선수는 불공정한 승리보다 패배를 택한다(A true curler would prefer to lose rather than to win unfairly)”

세계컬링연맹 규정집에서 ‘컬링의 정신(The Sprit of Curling)’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1541년경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컬링은 매너가 중요하다. 점수 계산도 상대팀과 합의를 통해 한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본인이 실수로 스톤을 터치했는데 양심을 어기고 경기를 진행하거나 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비매너’다.

상대방을 이길 수 없는 상황에 끝까지 경기를 끌고가는 행위도 ‘컬티켓(컬링+에티켓)’에 어긋난다. 승패가 결정된 순간이 오면 상대에게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악수를 청해야 한다. 지난 25일 평창 겨울 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전 9엔드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스웨덴 선수들에게 악수를 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트 표면에 얼음 알갱이를 손상하게 하는 행위도 절대 금물이다. 이재호 서울시청 컬링팀 코치는 “경기 중에 손바닥을 바닥에 오래 짚어 얼음 알갱이를 녹이거나 딜리버리를 하면서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길게 끌면 퇴장 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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