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운동화 사주려다 이웃 치사 아버지|불탄일 남매와 눈물의 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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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낡아터진 운동화 코끝으로 발가락이 보였다. 남학생들이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을 보며 놀려대자 소녀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가난한 아버지는 가슴이 메어지는것 같았다.
석가탄신일인 21일오전 제주시 제주교도소 정문앞.
86년9월 낡은 운동화 때문에 놀림을 당했던 여중 1년 딸에게 새 운동화를 사주기 위해 이웃에 꿔준돈 5천원을 받으러갔다가 시비끝에 이웃을 숨지게하고 3년형을 선고받았던 유지동씨(42·제주시도남동 960의3)의 아픈 사연이 중앙일보 (87년12월24일자)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져 복역 2년만에 21일 특별사면으로 출감했다.
『아버지!』
이날 새벽부터 교도소정문밖에서 기다리던 문임양(16) 성훈군(12)남매가 달려들어 유씨의 품에 안겼다.
『고생 많았지, 많이들 컸구나.』
『아버지, 정말 보고싶었어요.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유씨와 두남매는 부둥켜 안고 떨어질줄 몰랐다.
6년전 아내가 병고끝에 숨진이후 외롭게 살아온 어린 남매였다.
유씨가 문임양 (당시S중1년)의 담임으로부터 「문임이가 3일째 결석」이라는 통보를 받은것은 86년9월. 문임양은 아버지가 다그치자 『헌운동화를 신었다고 남학생들이 놀려대 학교가기가 싫다』며 울먹었다.
그래서 이웃방에 세들어사는 심모씨 (당시36세) 에게 꿔준돈 5천원을 받으려 갔다가 심씨가 『없는 돈을 어떻게 갚느냐』며 방문을 닫아버리자 이에 격분, 손찌검이 오갔고 이 과정에서 심씨가 뇌출혈로 숨졌다.
아버지가 옥살이를 하는동안 남매는 이웃 양행순씨 (36·여·미용업)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문임양은 밤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는 꿈을 꾸며살았다. 그러나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었기때문에 면회조차 할수없었다.
이들남매의 애처로운 사연이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진것은 87년12월. 전국 각지에서 격려편지와 성금이 답지했다.
또 법무부등 관계기관은 지난1월 유씨를 광주교도소에서 제주교도소로 이감시켜 주었다. 그래서 문임양은 3차례나 아빠를 면회할수 있었다.
아버지가 옥살이를 하는동안 문임양은 양씨가 경영하는 미장원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밤에는 야간중학교에 나가 고입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동안 가장 기뻤던 일은 동생 성훈군이 지난5일 어린이날에 청와대에서열린 어린이날 글짓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것. 『저때문에 옥살이를 하신 아버지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할거예요.』
문임양은 환히 웃으며 아버지의 손을 꼬옥 쥐었다.
교도소를 떠나는 유씨부자의 등언저리에 내리는 5월 햇살이 따스했다. <제주=김형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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