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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미투가 공작이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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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란 게 꾸려졌다. “‘진보’를 표방하는 운동사회 안에 만연한 성폭력을 문제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두 차례에 걸쳐 ‘가해자’ 10여 명을 실명 공개했는데 그중엔 방송사 노조 간부 A도 포함됐다. A는 명예훼손 혐의로 피해자와 100인위를 고소했다.

당시 기소된 활동가가 전희경이다. 2003년 말 나온 『성폭력을 다시 쓴다』에서 그는 “가해자는 반성도 사과도 없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며 방송사 사장에게 제출한 진정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해결되지 않은’ 채 종결된 사건에 분노했고 또 고통스러워했다.

5년 후 그는 ‘진보진영의 가부장제’를 더 파고들었다(『오빠는 필요 없다』). 성폭력도 한 주제였다. “성별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모든 곳에 여성에 대한 폭력은 존재하지만, 운동사회에는 내부의 성폭력을 묵인·은폐·재생산하는 독특한 논리와 체계가 작동해 왔다는 점에서 분석이 필요하다. 사건을 은폐하고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해자는 옹호하고 피해자를 운동사회에서 추방하는 고유의 메커니즘이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흔한 변명인 “상대도 원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 “의도한 건 아니다” 등에서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바로 대의(大義)와 위기에 처한 조직을 위해 덮어야 한다는 ‘조직보위론’과 음모론이다.

음모론은 여성-남성의 문제를 권력의 문제로 바꾼다. “피해 여성은 배후 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수단이고 성폭력은 인권 침해가 아닌 남성 간 권력 투쟁에서 활용되는 빌미일 뿐”이란 것이다. 조직보위론은 “‘진보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조직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위’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이 조직 밖으로 알려져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이에 따른 조직 내 해결 원칙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때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했다. 전희경은 “일견 개인을 희생해 조직을 보존하는 성 중립적 시도로 보이지만 실제로 희생되는 개인은 언제나 피해자인 여성”이라고 개탄했다.

10년도 더 전의 연구다. 사실 진보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김어준이 ‘미투’를 두고 “(공작의 시각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한 데 대해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보수가 관련이 있나”라고 비판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진영 내에서 더 비판을 받았다는 보도를 보면, 과연 ‘철 지난’ 얘기인가 싶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