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뤄시허, 장고 끝에 비몽사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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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3국 하이라이트>
○ .이창호 9단(한국) ● . 뤄시허 9단(중국)

좋은 흐름일 때는 너무 쥐어짤 필요 없이 순풍에 몸을 맡기면 된다.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는 말은 실전 심리에 기반을 둔 제법 그럴 듯한 격언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라"는 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둑에선 대체로 욕심에 가깝다.

장면 1(77~86)=흑?로 추궁하자 백?로 엇비슷하게 달아난 장면이다. 백은 달아나고는 있을 뿐 집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창호 9단의 마음속은 지금 집 부족증의 고통으로 인해 숯처럼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한데 이 장면에서 뤄시허(羅洗河) 9단이 갑자기 장고에 빠져들었다. 번개 같은 속기를 자랑하던 뤄시허가 3분여 동안 머리를 쥐어짜 찾아낸 수는 77의 옆구리 가격이다. 백의 허술한 연결고리를 보며 측면을 위협한 것이다.

순간 이창호 9단은 78로 한껏 벌리며 한줄기 서광을 느낀다. 공격이 안 된다면 77은 공배다. 78은 현찰이다. 백은 집의 균형을 되찾는 게 급선무이기에 77이 무척 고맙다. 사실 흑이 77 대신 A쯤 유유히 두어왔으면 백의 고통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78을 본 뤄시허가 다시 장고에 빠진다. 78에 대한 보복 수단을 찾아내지 않으면 77의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또다시 4분여의 장고 끝에 79로 격렬히 붙여갔다. 하나 86까지 흑의 강펀치는 허공을 그었을 뿐이다.

장면 2(87~90)= 87, 89로 두 점을 잡았다. 그게 전부다. 그러나 백90을 당해 흑?가 폐석으로 변한 피해가 더 크다. 순풍에 돛단 듯 잘나가던 흑이 이 부근에선 비몽사몽이 됐다. 안 하던 '장고' 탓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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