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민 공공 일자리의 '배신'…하남 산불감시원 채용 비리의혹

중앙일보

입력

산불 진화요원 선발시험 자료사진. *경기도 하남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의혹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산불 진화요원 선발시험 자료사진. *경기도 하남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의혹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23명 합격취소→11명 재합격?

경기도 하남시의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부정청탁이 확인돼 합격이 취소된 23명(전체 채용 규모의 74.2%) 중 11명이 ‘재합격’처리되더니,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사과 기자회견을 연 현직 시장은 최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여기에 내부 고발자인 9급 직원은 현재도 이번 비리 의혹에 연루된 팀장(6급)·과장(5급)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 중이다.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과정서 비리가 있었다는 내부 직원의 폭로글. [사진 독자]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과정서 비리가 있었다는 내부 직원의 폭로글. [사진 독자]

하남시는 지난달 22일 산불감시원 채용시험이 불공정하게 진행됐고 검정과정에서도 조작이 있었다는 A주무관의 폭로가 터져 나오자 자체 감사를 거친 뒤 31명의 합격자 중 23명을 불합격 처리했다. 불합격 처리자 전원은 ‘합격시켜야 할 사람’이라며 건네진 명단 등에 포함된 이들이다. 명단은 A주무관이 속한 부서의 총괄 책임자인 B과장, C팀장이 쪽지 등으로 전달했다.

산불감시원 채용 공고에 부정청탁을 할 경우 합격이 취소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사진 독자]

산불감시원 채용 공고에 부정청탁을 할 경우 합격이 취소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사진 독자]

하지만 불합격 처리자 23명 중 11명이 재합격해 현재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불감시원은 봄·가을철인 이달 1일~5월15일, 11월1일~12월15일 기간에만 일하는 조건으로 계약하는데, 하남시는 재공고를 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 등으로 전체 지원자 61명 중 정상적으로 합격한 8명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 53명을 대상으로 재선발 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재선발에는 불합격 처리자 23명이 그대로 포함됐다. 하남시 관계자는 “불합격자 중에는 ‘자신은 채용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지원자도 있었다”며 “재 채용시험은 공정하게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비리 의혹이 제기된 올초 산불감시원 채용공고 평가항목. 독자가 촬영한 문서를 한글파일로 제작했다.

비리 의혹이 제기된 올초 산불감시원 채용공고 평가항목. 독자가 촬영한 문서를 한글파일로 제작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여론은 곱지 않다. 하남을 지역구로 둔 이정훈 경기도의원은 “시가 부정청탁으로 합격이 취소됐던 23명 중 11명을 다시 합격 처리한 것은 ‘셀프 면죄부’를 준거나 다름없다”며 “산불감시원은 서민을 위한 공공근로 일자리로 모든 절차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정 촉박이유로 재공고 안내더니 #채용비리 불합격자 상당수 재합격

사과한 시장은 피의자로 조사

이 사이 오수봉 하남시장은 지난 25일 피의자 신분으로 하남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혐의는 직원남용 및 권리행사방해다. 앞서 경찰은 산불감시원 채용을 담당한 시청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채용공고 서류, 컴퓨터 저장장치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을 벌였다. 경찰은 누가 오 시장에게 채용을 부탁하며 명단을 줬는지 막바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채용청탁 과정에서 금품이 오가는 등의 대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특정 보훈단체, 기초의원의 이름이 ‘카더라식’으로 거론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며 “이르면 다음 주쯤 수사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브리핑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경기 하남경찰서가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오수봉 시장이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김민욱 기자

경기 하남경찰서가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오수봉 시장이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김민욱 기자

오 시장은 A주무관의 폭로 이틀 뒤인 지난달 24일 시청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정의 책임자’로 사과한 뒤 깊은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현재 피의자다. 기자회견 당시 오 시장은 “부정청탁과 연관된 것으로 확인된 담당 과장, 팀장에 대해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문책,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직사회의 경각심을 고취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남시청사 정문. 경찰의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다. 김민욱 기자

하남시청사 정문. 경찰의 산불감시원 채용비리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다. 김민욱 기자

내부 고발자인 A주무관은 자신에게 채용청탁 명단을 건넨 이로 지목한 과장, 팀장과 한 부서에서 여전히 근무 중이다. 하남시 인사담당 관계자는 “아직 경찰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인사 조처를 할 예정이다”며 “A주무관도 (같은 부서 근무를) 불편하지 않게 생각하고 지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지자체의 감사담당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인구 100만명의 한 지자체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대부분의 공익신고가 익명으로 이뤄지다 보니 고발자와 피고발자 간 구분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하남의 경우는 실명으로 공익신고가 이뤄진 경우인데, 당연히 인사 조처를 통해 서로 분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산불감시원은 대부분 봄철과 가을철로 나눠 5개월 정도 일한다. 주 5일(오전 9시∼오후 6시) 근무에, 최저임금보다 다소 높은 하루 6만5440원(8시간 기준)을 받는다. 비교적 업무 강도가 세지 않아 중장년층에게 인기다.

하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