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간강사 불안한 신분·박봉으로 고달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시간강사는 고달프다.
교수도, 학생도, 직원도 아닌 모호한 신분에 턱없이 낮은 강사료. 신분과 경제의 이중고에 시달리다 못해 이들 「신분증 없는 선생님」들이 대학단위로 노동조합·협의회 구성등 자구노력에 나섰다.
서울대 시간강사들의 노조설립 신고를 계기로 전국 1만6천여명의 대학시간강사들의 현황과 문제점을 알아본다.
◇노조설립 추진=서울대 시간강사 36명은 13일 교내 인문대 강의실에서 「서울대 노동조합」창립대회를 갖고 14일 서울관악구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냈다.
이들은 노조설립 취지문에서 『지난해 11월 시간강사 1백50명이 「서울대 시간강사협의회」를 구성. 신분 및 기본생계비 보장등을 당국과 학교에 요구했으나 전혀 관철되지 않아 보다 강력하고 합법적인 기구로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시간강사들은 이에 앞서 노동부와 문교부에 질의서를 보내 「시간강사는 근로기준법 14조에 의한 근로자에 포함된다」「시간강사는 교육공무원이라 볼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아 노조설립 근거로 삼았다.
서울대 이외에 연세대 시간강사들도 금주내에 「시간강사협의회」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며 고대·서강대·성대 등에서도 자치단결기구 구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학별 자치기구가 구성되는 대로 전국단위의 노조연맹 또는 시간강사협의회를 결성, 권익보장등 현안문제 해결에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시간강사 실태=문교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시간강사는 모두 1만6천2백58명. 이는 전체 전임교원 2만1천8백30명에 비해 74%의 비율에 해당한다.
이같이 대학교육 인력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간강사에 대해 문교부는 그 실태 파악조차외면하고 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대학교육협의회의 84년도 대학평가보고서를 인용해보자.
당시의 시간강사 1만3천9백63명 가운데 30.1%는 타대학에 재직하는 전임교원이고 16.9%는 공공기관에 재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절반이 넘는 53%는 시간강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시간강사 가운데 15.5%는 박사학위 소지자로 나타났고 71%는 석사학위, 9%는 학사학위 소지자였다.
이들 시간강사는 주당 평균4.1시간(전임교수는 7.9시간) 강의를 맡고 있으며 전체 대학 개설과목 가운데 27.7%의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조사 당시 교수법정정원에 대비한 전임교수 확보율은 61.3%였으나 현재도 67% 내외로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대학교육의 큰 비중을 시간강사에 의존하는 것은 ▲전임교수 확보율이 낮아 전임초과강의를 시간강사에 맡겨야 하고 ▲특수분야에 대한 전임교수 채용이 어려우며 ▲사립대등에서 인건비 절약을 위해 전임교수확보 대신 시간강사를 채용, 수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우=대학교육협의회 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운 서울대부총장)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국평균 시간강사료는 시간당7천1백18원으로, 시간강사의 절반이상이 월수입 20만원 이하의 박봉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강사료는 서강대·연대·외대등 일부 대학만이 1만원내외고 국·공립대는 일률적으로 6천원, 그밖의 대부분 대학은 6천5백∼7천5백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공립대의 시간강사료는 올해 5백원이 울라 6천원이 됐다고는 하나 공무원 직무교육 외래강사에게 지급하는 강사료 1만∼3만원에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국·공립대의 경우 그나마 「실제 강의수에 따라 지급한다」는 강사료 규정에 따라 방학(4개월)·시험·휴강등 수업결손때는 강사료가 지급되지 않아 1주9시간 강의(일반교수평균강의시간)기준으로 월15만원, 연수입 1백20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반기업체의 고졸초임사원의 평균임금(21만8천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같은 강사료로는 연구·교재 준비는 물론 기본생계비마저 안돼 부직을 구하거나 2∼3개 대학에 겹치기 출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간강사의 연구의욕이 떨어지고 강의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대와 충북대 등 3개 대학에서 1주 10시간의 강의를 맡고 있는 김모씨(30·서양사전공) 는 『월수입 20만원으로는 부인과 두 자녀의 생계가 힘들어 결혼 당시 부모의 도움으로 얻은 전세방까지 처분해 월세로 바꿨다』며 『겹치기 출강을 해도 교통비·교재비·방학등을 계산하면 실제 수입은 윌10만원 수준에 불과한 극빈자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대부분인 시간강사들 사이에선 결혼을 늦추거나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 관례인 것처럼 되어가고 있으며 번역·연구소 업무보조등 부직은 물론 「몰래바이트」과외지도까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저생계비에 필요한 월 45만원을 지급 받으려면 시간강사료가 최소 1만2천원으로 올라야한다』며 『81년 이후 공무원 임금이 지금까지 1백% 가까이 올랐으나 강사료는 불과 20% 인상에 그쳤다』고 주장, 교수 봉급과 연계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문교부 측은 『시간 강사료의 인상을 해마다 요구하고 있으나 경제기획원이 정하는 예산단가에 크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내년에는 시간당 7천원으로 인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불안한 신분=시간강사는 교육법상 전임교수·조교등 교직원의 범주에서 제외돼 재직증명서 발급·직장예비군 편성·의료보험등 신분보장은 물론 일부 대학에서는 신분증조차 발급하지 않아 시위등으로 교문을 통제할 때는 교내 출입조차 제약을 받는 실정이다.
또 도서관·강사실등 수업준비·연구에 필요한 부대시설 제공이 없거나 출입이 제한되고 학사운영·교과목 개설 등에 대한 발언권은 아예 인정되지 않는 실정.
서울대 시간강사 이모씨(34)는 『쉬는 시간엔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후배대학원생의 연구실을 기웃거리는 형편』이라며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했다.
◇수급 불균형=시간강사 문제의 근본원인은 대학원 정원의 폭발적인 증가와 상대적으로 정체된 교수인력 수요의 불균형에 있다.
일부 사립대에서는 이점을 이용, 전임교수대신 강사료가 싼 시간강사를 대폭 기용하는 등 탈법운영사례까지 빚어지고 있고 시간강사가 과거와 같이 전임교수가 되기전 1∼2년 과도기적으로 거쳐가는 자리가 아니라 장기간 자신의 연구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까지 짊어지는 직업인으로서 정착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박사학위자도 자리가 없어 시간강사로 남고, 5년이상 시간강사를 계속해도 장래 취업에 대한 비전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낮은 임금과 불확실한 신분의 「사각지대」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급료인상등 현안문제해결뿐 아니라 △대학교수자격시험제도 △교수충원확대 △연구소활성화를 통한 연구원 기용제도등 학문발전의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한천수·민병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