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5월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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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눈부신 5월의 아름다움이여』「하인리히·하이네」는 이렇게 노래했다.「롱펠로」는 5월이라는 말엔 향기가 묻어 있다고 했다.『5월, 꽃으로 잠식된 이 달은 젊음과 사랑과 노래로 넘치니…』「롱펠로」는 5월의 향기에 도취라도 된 양 찬사를 잇지 못했다.
그 5월을 예찬하는데 누구의 시를 빌 필요도 없다. 눈을 들어 밖을 보면 신록의 반짝임에 마음은 벌써 시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싱싱한 삶을 서로 확인이라도 하듯이 반짝이지 않는 것이 없다.
삭막하기만 하던 서울도 그동안 꽂아 놓은 수목들이 제법 나무 구실들을 하고 있다. 사람들도 그전엔 나무를 비틀고 흔들고 할퀴어 영락없이 죽여놓더니 지금은 다르다. 어느 구석에 심어 놓은 나무들도 소리없이 자라고 있다.
요즘 시외버스라도 타고 잠시만 도회를 벗어나도 마음은 하늘을 날듯이 가벼워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전율할 것 같고, 자연의 그 깨끗함에 포옹하고 입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자연을 잃고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며 또 얼마나 목마른 것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더 우리를 심난하게 만드는 것은 5월의 그 눈부신 아름다움도, 5월의 사랑과 젊음과 노래도 모두 빼앗기고 심통과 충격과 가슴 메어지는 아픔으로 이 계절을 맞아야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해마다 그 좋은 시절은 예외없이 오고 가지만 어느 한해 마음 열어 놓고 5월의 향기를 들여마셔 본 적이 있는가.
이맘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은 갑호 비상을 치고 전투복과 투구를 뒤집어쓰고 길거리를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5·16, 5·17, 5·18 악령쫓는 주문처럼 외야 한다. 실로 우리의 5월은 악몽같은 달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안과 공포와 좌절의 달이다.
헌법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선거를 몇 번이나 치르고 나도 5월은 그전의 5월 그대로 변한 것이 없다. 5월의 꽃이 넘쳐도,5월의 바람결이 그처럼 부드러워도, 5월의 신록이 그처럼 신선해도, 우리에겐 그저 답답하고 홍수에 젖은 자연의 그림자뿐이다. 우리에게 5월을 자연 그대로 돌려 줄 자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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