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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저임금 일자리만 파괴하는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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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정책 슬로건 아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보다 16.4% 오른 시간당 7530원이 됐다.

IMF, 최저임금 추가 인상으로 #한국의 국가경쟁력 상실 경고 #현실 기반 두지 않은 정책들은 #민생만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에 정책 제언을 했다. IMF 보고서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잠재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우려다. 현재 2%대 후반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 무렵 1%대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원인으로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 낮은 생산성,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를 꼽았다.

IMF는 또 올해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성향이 높은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를 진작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추가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상실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가 인상보다는 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해볼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IMF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낭패를 본 프랑스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평균 임금의 35%에서 50%까지 급격히 올린 프랑스에서 저임금 근로자와 청년 근로자는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200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를 사용자 지원과 세금공제 혜택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나마도 지원 정책의 한계에 직면해 2008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 때부터는 경제 상황에 맞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자제하도록 독립적인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둔 바 있다.

한국은 IMF가 지적한 프랑스의 실패 사례를 그대로 답습해 가고 있다. 정치 슬로건으로 아무 과학적 근거 없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설정하고, 과도한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의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학자들의 직언을 정치 공세로 치부했다. ‘대선 때 모든 후보가 1만원으로 주장했는데 왜 문제가 되냐’는 식으로 귀를 닫는다.

시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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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전문가들이 노사단체 대표와 협치로 매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과학적 분석에 기반을 둔 최저임금 결정 노력은 부족했다. 이미 노동시장에서는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 불안 시름이 고조되고 있다. 지방에는 불법적이라도 생계만은 유지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한 데도 “최저임금의 효과는 아직 잘 모르니 4월 이후 고용 통계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안일한 답변만 한다. 다만 여당에서 오는 6월 지자체 선거를 우려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정도다.

한국에는 IMF의 경제전문가들보다 훌륭한 전문적 관료와 학자들이 많다. 이들이 정책설계자들에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외쳐도 삼류 전문가와 정치인의 물타기 목소리에 묻혀 주목받지 못한다. 현장의 객관적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에서도 정치권의 주장에 줄서기가 팽배해 국민 입장에서 도대체 과학적 사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지금부터라도 바른 경제 정책을 위해 필자는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이상주의자(idealist)나 이념주의자(ideologue)가 정책 설계를 해도, 실행가(doer)와의 자유로운 토론과 정책 재설계를 위한 피드백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 청와대나 부처 장관에 해당하는 정책 설계자가 부처 공무원에 해당하는 실행가와의 팀플레이를 무시하고 일방적 지시로 이뤄지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는 동계올림픽 팀추월 경기에서처럼 실행가를 후미에 남기고 설계자들만 선두로 내달리는 형국이다.

현재 정책 집행률이 25%에 불과한 일자리안정기금 정책은 ‘팀추월’ 실패와 비슷한 지경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일자리 불안이라는 복병을 만나 구체적 정책 설계·집행에 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덜컥 3조원 지원 예산부터 책정한 측면이 있다. 실행가가 예산 소요를 먼저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예산을 정하는 것이 정책의 정도였다.

또 일자리정책 설계자들의 노동시장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기보다는 이념이 같은 끼리끼리 집단들을 모으는 상황에서는 좋은 일자리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념적 슬로건을 정치권에서 내세웠다 하더라도 현장 정책은 전문 관료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주고, 이념이 다르더라도 전문성이 있는 학자들의 의견을 경청했어야 했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못한 정책들은 선량한 의도와 달리 민생만 피폐하게 할 뿐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