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사태, 산업부에 계속 맡겨도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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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그림이다. 구조조정과 별 인연이 없던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GM 사태 처리의 주무 부처로 지정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 그렇다.
예고된 상황이긴 하다. 지난 연말 발표된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향’의 핵심은 산업적 측면과 금융논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존 금융위원회의)금융 논리 중심 구조조정에서는 산업생태계 등 산업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금융 중심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은 분명 있었다. 금융은 숫자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속성상 비정하고 융통성이 없다. ‘숫자 신봉 주의’는 한진해운 청산 때 제대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적어도 ‘정량 평가’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기반을 둔다.

반면 산업 중심 구조조정은 ‘정성 평가’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면 객관적 기준이 없다. ‘사심’이 조금만 들어가도 정치적 결론 도출로 이어지기에 십상이다. 산업 중심 구조조정 방침에 대해 “사실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GM 사태 처리를 산업부에 맡겼을 때도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산업부는 산업진흥과 수출진흥이 부처의 존재 이유다. 그동안의 구조조정 사안에서도 업계 쪽 대변자 역할을 맡아왔다. 구조조정 주무 부처가 된다고 해서 스탠스가 일거에 바뀔 가능성은 작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13일 전북 군산시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으로 일부 차량이 출입하고 있다. 이미 지난 8일 생산라인 가동이 중지된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경영난을 이유로 5월말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2천여명을 구조조정 할 것이라고 밝혔다.2018.2.13/뉴스1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13일 전북 군산시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으로 일부 차량이 출입하고 있다. 이미 지난 8일 생산라인 가동이 중지된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경영난을 이유로 5월말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2천여명을 구조조정 할 것이라고 밝혔다.2018.2.13/뉴스1

역량 부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의 구조조정 주무 부처는 금융위원회였다. 금융위는 채권단을 총괄 관리하면서 최근의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까지 굵직굵직한 구조조정 사안들을 처리하면서 역량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하지만 산업부에 구조조정 노하우란 게 있을 리 없다. 사실상 결정권한도 없다. GM의 4대 요구 사항 중 산업부 소관 내용은 외국인투자기업 지정을 통한 세제 지원 하나뿐이다. 나머지 3개, 다시 말해 출자전환과 신규 투자에 지분보유율(17.02%) 만큼 산은이 참여해달라는 것과 한국GM 부평 공장에 대한 담보 설정을 허용해달라는 것은 모두 금융위와 산은이 결정할 사안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주무 부처를 맡을 조건이 안 된다. 실제 한국GM 사태에서 산업부가 버거워하는 모습은 속속 목격되고 있다. 중요 분기점마다 ‘구원투수’처럼 기재부가 나서고, 중요 발표도 기재부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산업부의 역량 부족을 대변해준다.

이럴 거면 차라리 기재부가 명실상부한 주무 부처로 전면에 나서서 키를 잡는 게 낫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의 그림이 잘 이해가 되지 않다 보니 생색은 기재부가 내고, 책임은 산업부가 지도록 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억측까지 들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산업은행과 GM은 실사에 합의했고 이제 협상을 위한 첫 단추는 끼워졌다. 정부는 최소한 1개월 이상의 실사 기간 GM과의 협상 전략을 다시 한번 큰 틀에서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차제에 주무 부처에 대한 고민과 점검을 다시 하는 시간도 함께 갖는 게 어떨까.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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