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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하루하루가 힘겨운 샐러리맨, 어느 날 그 방에 들어갔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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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 시간만 그 방에

한 시간만 그 방에

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슨 지음, 윤미연 옮김, 푸른숲

내게만 특별한 시선을 보내는 것 같은 안내데스크 여직원, 호의적인 사내 평판, 업계에서 인정받는 발군의 기량, 새 직장으로의 영전.

직장인 누구나 꿈꿔봤을 법한 ‘로망’을 자극하는 장편소설이다. 물론 로망 혹은 욕망의 반대편에 악몽도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동료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 업무시간에 잡담에 열중하는 동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으려다 보니 오히려 피곤해진다. 여기까지는 약과다. 오늘 나를 바라보는 상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선가 나의 경력을 망치려는 작당이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심리적인 천당과 지옥,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샐러리맨 누구나의 이야기다. 이 모든 소동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은 없을까. 나만의 방이 작가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월급쟁이에게도 필요하다. 최선의 업무 효율을 위해. 그걸 쫓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소설은 그래서 방을 내세운다. 소설이 쓰인 원어인 스웨덴어 제목 ‘Rummet’는 더도 덜도 아닌 방이다. 한국어 제목은 극적 효과를 위해 간절함을 더한 느낌이다.

소설이 설정한 방 안에서 주인공 비에른은 현실세계에서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손쉽게 얻는다. 최고의 휴식과 엄청난 능력을. 그 결과 막강한 사내 영향력을 발휘하기 직전까지 간다. 최고위층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서다. 하지만 결국 좌절되는데, 사무실 동료들의 집단 반발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능력 부족은 인정할망정 비정상인 상황을 아무 문제 없는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비에른의 만화 같은 능력과 비정상적인 행동이 사람들의 그런 균형감각을 건드린다. 그러나 독자는 아무래도 주인공을 편들기 마련. 비에른은 정상과 비정상의 중간,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는 환자 설정이지만, 그런 절름발이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비에른을 비정상이라며 몰아붙이는 당신들은 과연 얼마나 정상적이냐고.

소설은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던 비에른의 질환이 차츰 드러나는 과정,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그의 극적인 반전과 몰락 장면들을 실감 나게 뽑아낸다. 문장이 짧고 알기 쉬워 빠르게 읽힌다. 장르소설 느낌이 나는 대목도 있지만 주제가 묵직해 카프카의 어떤 소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허만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를 연상시킨다. 번역, 가벼운 분량도 가점 요인이다. 저자 요나스 칼손은 스웨덴의 유명 배우라고 한다. 불쑥 소설 쓰기에 도전해 비에른처럼 만화 같은 성공을 거둔 듯하다. 대체 그의 방은 어떻길래?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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