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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정약용 전봉준 황현 … 오메! 징허고 오지네, 남도는 살아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전라도 천년

전라도 천년

전라도 천년
김화성 지음, 안봉주 사진
맥스미디어

“거시기가 거시기고, 저거시 저거시고, 요거시 머시기고···”(210쪽)

“싸목싸목 쫀득쫀득 유장하고, 싸르락싸르락 새벽잠결에 어머니 쌀 이는 소리처럼 아련하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이야기꽃자리.”(53쪽)

“썩을, 염병, 지랄, 오살, 육실, 호랭이가 열두 번 차갈···”(34쪽)

살아 펄떡이는 입말의 향연이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겁나게’ 놀아버리고, 판소리 가락 저리가랄 말의 성찬이 그들먹하다. 막걸리 한 주전자만 사면 상다리 휘어지게 인심을 대방출하는 전라도의 흥이 질펀하다.

운주사 서쪽산마루에 누운 와불. [사진 안봉주]

운주사 서쪽산마루에 누운 와불. [사진 안봉주]

“오메! 징허고 오지게 살았네” 소리가 절로 들리는 지은이 김화성(62)씨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일간지 문화·스포츠레저 전문 기자로 일하며 책과 술과 말에 취해 살아온 천생 전라도 사람이다. 한민족 오천 년 역사에서 변방으로 내몰리면서도 줄기찬 생명력으로 꿋꿋한 고향 전라도의 천년(1018~2018)을 그는 화순 운주사 와불의 기(氣) 싸움으로 푼다. 이 돌부처들이 벌떡 일어나는 날, 후천개벽의 새 세상이 오리라 믿었던 민초의 바람을 그는 벌판의 눈보라 속 ‘따순 기운’에서 느낀다. 변방은 그에게 ‘가능성의 최전선’이다.

“‘과거 1000년은 곧 미래 1000년의 주춧돌’입니다. 변방의 힘은 용솟음치는 역동성에 있습니다. 중심에 대해 조금치도 꿀리지 않고 맞서는 기개와 당당함이 있습니다.”(366쪽)

‘솔찬히 아그똥한’, 쉽게 말해 엄청 당돌하고 반항적이었던 전라도 옛 임을 더듬는 그의 발걸음이 옹골차다. 조선의 혁명가 정여립, 유배지에서 실학을 꽃피운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 동학농민운동의 들불이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에 서예가 이삼만과 우국지사 황현까지, 남도 땅의 지난 1000년이 여러 시인들의 시와 안봉주 작가의 사진에 실려 굽이굽이 펼쳐진다. 곰살맞고 차진 글맛에 취해 책장을 넘기다 보면 황지우의 시 ‘거시기’가 입에 감긴다. “(…)그러믄/조타/조아/머시기는 그러타치고/요거슬어째야 쓰것냐/어째야 쓰것서어/응/요오거어스으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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