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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5억 달러 공장 베트남에 뺏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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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의 퇴진을 주장하는 시위대가 22일 방콕의 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탁신을 현상 수배자로 그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방콕 AP=연합뉴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이 태국에 대한 5억 달러(약 5000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접고 베트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탁신 친나왓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거의 매일같이 계속돼 정정이 불안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시위대가 반기업 정서까지 보이자 인텔은 서둘러 마음을 바꿨다. 당황한 태국 경제계는 "정치가 경제를 죽인다"며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올 태국 경제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 떠나는 해외 기업들="정치가 경제를 옥죄고 있다. 외국 투자가들은 이미 태국을 떠나 다른 동남아 국가로 발길을 돌렸다." 태국 정부의 최고 경제정책자문연구소인 상공회의소대학 국제무역연구소(CIT)의 얏비산와니츠 소장이 21일 회견에서 한 말이다. 1월 이후 3개월째 거의 이틀이 멀다 하고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면서 각종 경제지표가 위험수위까지 추락한 데 대한 일종의 경고다.

그는 우선 인텔을 예를 들었다. 이 회사는 올 초까지만 해도 태국에 5억1300만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올 들어 시위가 계속되자 인텔은 투자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장을 바꿔 공장을 베트남에 짓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여기에다 최근 몇 주간 반탁신 시위대가 보여준 반기업 정서에 인텔은 적잖이 놀랐다는 게 얏비산와니츠 소장의 설명이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21일 탁신 총리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차론 포칸드 그룹(CP)의 방콕 본사 앞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CP그룹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정부에 협조하는 모든 기업에 항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미 태국에 투자한 기업 가운데 수십 개가 다른 동남아 국가로 공장 이전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CIT는 최근 올 태국의 외국인 투자가 전년 대비 최소 6% 이상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 경제는 바닥=CIT는 올 경제성장률을 3.2~3.98%로 예상했다. 연초 탁신 정부가 최저 목표로 잡은 5% 성장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97~98년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10년 만에 최저다. 관광 수입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 것으로 예상됐다. 최대 관광지인 푸껫은 3월 중순 현재 전년 대비 20%나 수입이 줄어 2년 전 지진해일 때보다 못한 상황이다. 정부가 발표한 2월 소비자신뢰지수(CCI)도 5개월 만에 최저인 85.1을 기록했다. CCI가 100 이하이면 향후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보다 많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태국경제인협회 등 3대 경제단체들이 20일 성명을 발표, "탁신 총리와 시위대가 하루빨리 대화로 난국을 풀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경제가 파멸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 계속되는 반탁신 시위=이 와중에도 21일엔 3000여 명이 방콕 시내에서 시위를 벌여 중심부 차량 통행이 통제됐고 상가가 문을 닫았다. 시위대는 태국 정부청사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으며, 이 가운데 수백 명은 총리공관 앞에서 철야 농성을 했다. 태국 야당은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총선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21일 재확인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날 탁신 총리가 군소 정당원들에게 10만 바트(약 260만원)씩을 주고 총선에 출마해 야당 표를 교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탁신 총리 측은 이 같은 주장을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 정정 불안 배경=시위 사태는 이동통신사, 위성통신업체, 민영방송을 거느린 친그룹의 소유주인 탁신 일가가 1월 이 회사 주식 49.6%를 싱가포르의 테마섹 홀딩스에 팔아 1조8000억원을 현금화하면서 불거졌다. 문제는 탁신 일가가 거액을 챙기면서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각 직전 탁신 총리가 통신주의 외국인 투자한도를 25%에서 50%로 올린 것도 집안의 이익을 위한 조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 등 반탁신 진영은 "나라 경제가 바닥인데 총리는 주식을 팔아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쥐었다"며 "이는 권력을 이용한 치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3월 23일자 3면 '태국 불안한 정국 때문에 경제가…'제목의 기사에서 환율 계산이 잘못됐습니다. 10만 바트를 약 120만원이라고 썼는데, 약 260만원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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